고수리 에세이스트
상자를 쌓아둔 구석에 유아차를 세워두고, 아기들이 채소 과일에 한눈파는 사이에 후다닥 장을 봤다.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오가며 아기들을 봐주셨다. 칭얼거리면 얼러주고 울면 달달한 걸 손에 쥐여주셨다. 마트에서 일하던 청년은 자신도 쌍둥이로 자랐다며 유아차가 오가기 쉽도록 길을 터주고 갈 때까지 문가를 살펴주었다. 그렇게 세상 요란하게 한 바구니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달그락거렸다.
장을 보고 돌아오던 어느 저녁이었다. 해가 저물어 어둑해지자 아기들이 울기 시작했다. 빨리 가야 하는데 아기들은 울고, 밤은 오고, 거리는 위험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기들을 양팔에 안아 들고서 아슬아슬하게 유아차를 밀었다.
“나도 아들만 둘 키워 봐서 남 일 같지가 않네. 지금은 힘들어도 애들 크면 참 든든해요. 힘들 때는 주변에 기대요.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잖아. 나도 아주머니들이 많이들 도와줬어요.” 다정한 목소리가 다독다독하니 이야기 같은지 아기들도 울음을 그쳤다. 캄캄한 골목 어귀를 돌아 가로등을 지나 어느 집 담벼락을 지날 즈음이었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가, 꽃 봐라.”
달곰한 향기가 났다. 담벼락을 올려다보니 하얀 라일락이 한 무더기 피어 있었다. 어스름이 내린 하늘에 별 사탕 뿌려놓은 듯 희붐하게 빛나던 꽃들. 태어나 처음으로 꽃을 본 아기처럼 우리는 라일락을 올려다보았다. 가만한 바람이 지나갔다. 품에 안은 아기들의 무게와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무언가 속삭여주고 싶었지만 목울대가 아렸다. 아름다운 순간에는 어째서 울고 싶어지는 걸까. 그저 오도카니 서서 함께 꽃을 보던, 잊을 수 없는 봄밤이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