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알파고 시나씨 터키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1918년 수도인 이스탄불이 연합군에 점령당하는 동안 항복을 원하지 않았던 군인들은 해방전쟁을 일으키려 했다. 수도가 적군에 넘어갔기 때문에 당시 술탄과 국회는 실질적으로 힘이 없는 존재가 됐다. 그래서 터키 군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점령되지 않은 지역에서 준비했다. 그러다 보니 해방군은 자유를 잃지 않은 터키 도시 위주로 의원들을 선출했고, 앙카라에서 새로 국회를 열었다. 그 날짜가 바로 1920년 4월 23일이다. 국회에서 터키를 되찾을 때까지 연합군과 전면 전쟁을 벌이자는 결정이 나왔다. 터키 국민이 처음으로 술탄 한 명의 명령이 아닌, 회의를 통해 민주주의 방식으로 큰 결정을 내린 것이다.
2년 후 1922년에 해방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1923년 해방군이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앙카라를 수도로 삼은 터키공화국이 탄생했다. 이후에 국회가 열린 그 첫날을 국민이 늘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해방군 장군이자 터키의 국부 케말 파샤는 국경일로 지정하려고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날의 이름을 ‘어린이날’로 지었다.
한국의 어린이날은 좀 다르다. 한국 어린이날의 탄생 배경에도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고자 ‘색동회’를 중심으로 1923년 만든 것이 어린이날의 시초다.
한국에 와서 보니 한국인들은 진짜로 어린이날을 어린이날답게 보내고 있다. 어린이날이면 어린이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터키에서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어린이날에 어린이가 행사의 수단이 되는 구조였다. 4월 23일마다 고향 광장에서 2∼3분 동안 행진하려고 뙤약볕 아래서 엄청나게 오래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이게 무슨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날인가.
늘 강가에 가고 싶다던 아들 하룬이의 말이 기억나 며칠 전 아들과 함께 경기 남양주시의 강가에서 캠핑을 했다. 저녁에는 장난감 가게에 가서 늘 사고 싶어 했던 리모컨으로 움직이는 큰 자동차를 사줬다. 바로 이런 게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날’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조금 고생스러워도 아이는 어린이날 마음껏 놀았다. 아들을 바라보며 행복한 마음과 ‘질투’가 동시에 느껴졌다.
어린이날을 보내며 또 다른 생각도 떠올랐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의 어린이날 탄생 배경에는 아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자는 취지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의미는 많이 사라졌다. 국가 주도하에 터키 스타일로 하는 공식적인 어린이날도 아니고, 지금 한국처럼 소비가 늘어나는 휴일 스타일도 아닌, 중간 지대의 절충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예전 터키에서 어린이로 살았던, 현재 한국에서 어린이 아빠로 사는 사람이 어린이날을 맞아 떠올린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