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백신 공급 확대까진 산 넘어 산
○ ‘자국 특허 포기 지지’ 이례적
인류의 팬데믹 극복을 위해서는 백신 지식재산권을 한시적으로라도 유예해야 한다는 요구는 지난해 가을부터 나왔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개발도상국들이 먼저 제안했고 이후 백신 확보가 늦어진 대부분의 나라와 국제기구들이 같은 요구를 하고 나섰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들이 반대해 논의는 더 진척되지 못했다.백신 특허 해제에 대한 요구가 다시 높아지기 시작한 건 최근 인도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면서부터다. 인도는 지난달 26일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직접 나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백신 특허 해제 청원을 지지해 달라고 했다. 여러 국제단체들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결정을 내리라’며 미국을 압박했다. 미국 내에서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진보 진영 인사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해 왔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이번 결정이 아주 이례적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5일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의 제약업계보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보조를 맞추는 놀라운 조치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팬데믹 상황이 아무리 급박하다고 해도 다른 나라를 돕는다는 이유로 자국 기업에 손해를 안기는 것은 흔치 않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러시아 등이 개도국에 백신을 지원하면서 외교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미국이 의식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 제약사 반발 등 ‘산 넘어 산’
제약회사의 반발도 넘어야 한다. 화이자와 존슨앤드존슨 아스트라제네카 등을 회원사로 둔 미국제약연구제조사협회(PhRMA)는 이날 성명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의 팬데믹 대응을 약화시키고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했다”며 “이 결정은 혼란을 초래하고 공급망을 약화시키며 위조 백신의 확산을 불러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앞으로 다른 감염병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제약사들이 거액을 투자해 백신을 개발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의 백신 특허 도둑질’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다른 정부가 특허를 훔치는 것을 백악관이 돕는다면 누가 미래의 치료제에 투자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지식재산권 일시적 유예가 백신 공급량 증가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개발도상국 등 백신 제조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한다고 해도, 백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나 장비,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리법을 알아내도 음식을 만들 재료나 요리사, 조리도구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