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페어 컬처/볼프강 M 헤클 지음·조연주 옮김/252쪽·1만5000원·양철북
이호재 기자
놀라운 건 저자가 국립독일박물관 관장이라는 것이다. 이 박물관엔 라이트 형제가 만든 최초의 엔진 비행기 등 2만8000개의 전시품이 있다. 독일에서 꽤나 고위직이라는 뜻이다. 앞서 말한 행동들이 직급에 걸맞지 않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건 많은 것을 생산하고 폐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의문 때문이다. 새로 만들고 버리며 성장하는 경제체제가 옳은가. 환경은 오염되는데 그만큼 우리는 만족하고 있는가. 저자는 자신의 자린고비 행동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며 우리에게 묻는다.
나도 무엇인가를 사고 버리는 걸 아까워한다. 물론 시스템에 대한 고민보단 돈이 아까워서다. 트레이닝복을 한번 사면 무릎이 다 늘어날 때까지 입는다. 10년 동안 입던 셔츠가 찢어졌을 땐 옷을 오랫동안 입었다는 만족감을 느꼈다. 매일 출근길에 메고 다닌 지 5년이 넘은 가방의 내구성을 주위에 자랑하기도 한다.
최신 제품에 관해서는 저자도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요즘 나오는 제품들을 보며 화를 낸다. 내구성에 방점을 찍었던 과거 제품들과 달리 요즘 제품들은 별로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스마트폰처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일수록 그런 점이 두드러진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 그 사이 환경은 망가지고 있다. 또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마음도 사라지고 있다.
저자는 정부의 정책이 오래 쓰는 제품을 우대하는 쪽으로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구성이 좋은 냉장고에 세금 혜택을 많이 주면 가격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튼튼한 냉장고를 사서 오래 쓰면 그만큼 버려지는 물건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정책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헌옷 수선법 등을 가르쳐 주는 독일의 ‘리페어 카페’처럼 실생활에 가까운 방법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국엔 과거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 운동’이 있었다. 요즘엔 온라인으로 중고거래를 하며 안 쓰는 물건에 새 활기를 불어넣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오늘은 중고거래 앱으로 무언가를 팔거나 사보는 건 어떨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