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특수학교 가는 길’ 7년의 여정
지난달 28일 서울 강서구의 특수학교인 ‘서진학교’에서 장애아를 위한 학교를 세우기 위해 7년간 쉼 없이 달려온 네 엄마를 만났다. 이들은 2017년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다른 엄마들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웰페어뉴스 제공
“쟤 좀 봐.” “우리 학교에도 장애인인 애가 오나 보네.”
환영받는 아이들 속에 홀로 어색하게 서 있던 널 보며 엄마는 집에 와 한참을 울었다. 네가 장애 판정을 받았던 날보다 더 슬펐던 날이다.
어버이날을 열흘 앞둔 지난달 28일, 서울 강서구 서진학교에서 특수학교를 만들기 위해 7년을 뛰어온 엄마들을 만났다. 중증 발달장애인인 혜련이 엄마 장민희 씨(49), 재준이 엄마 정난모 씨(50), 현정이 엄마 조부용 씨(61), 지현이 엄마 이은자 씨(50)가 그 주인공이다. 엄마들은 2017년 한 장의 사진 속에서 한국 사회를 울렸다. 서울 강서구 폐교 부지에 특수학교 건립을 허락해 달라며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은 사진이었다. 당시 엄마들은 이렇게 말했다. “욕을 하셔도 괜찮습니다. 지나가다 때리시면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만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긴긴 눈물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지난해, 엄마들이 무릎을 꿇었던 그 자리에 서진학교가 문을 열었다. 서울에 특수학교가 문을 연 건 17년 만의 일이었다. 아직 특수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대한민국 6만8805명의 장애아를 위해 달려온 엄마들의 위대한 여정을 따라가 봤다.
“우리가 힘든만큼 세상은 달라져요, 그러니 멈출 수 없죠”
특수학교 세운 ‘무릎 호소’ 엄마들의 땀방울지난달 29일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김정인 감독, 장민희, 김남연, 조부용, 정난모, 이은자 씨(왼쪽부터) 모습. ㈜영화사 진진 제공
그리고 3년. 마침내 지난해 문을 연 공립 특수학교 서진학교에서 지난달 28일 ‘그때 그 엄마들’을 만났다. 이들의 아이들은 모두 커서 서진학교에 다닐 수 없다. 그래도 엄마들은 “이제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울고, 소리치고, 무릎까지 꿇어가며 학교를 세운 시간을 담담히 얘기했다. 어느 누구도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 7년 걸린 ‘학교 가는 길’
시작은 이 씨가 2013년 만든 강서장애인부모회였다. 당시 이 씨는 중증 발달장애인인 딸의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특수학교를 보내고 싶어 찾아봤지만 자리가 없었다.
“정신이 퍼뜩 들더라고요. 내가 아이를 서울대 보내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웃음) 특수학교 보내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아이를 데리고 병원만 다닐 게 아니라 부모들끼리 뭉쳐서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대체 왜 특수학교에 반대할까. 특수학교의 필요성을 그만큼 모르기 때문 아닐까. 그럼 그 필요성을 직접 알려주자. 발달장애아에게 특수학교가 왜 필요한지 직접 느끼게 해 주자.’
2016년 3월, 아무리 두드려도 높아만 지는 벽 앞에서 엄마들은 눈물을 머금고 ‘결단’을 내렸다. 이들은 장애인 자녀 50여 명의 손을 잡고 서울시교육청을 찾았다. 그리고 건물 1층에 아이들만 둔 채 그냥 떠났다. 마음이 약해질까 봐 아이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입술을 깨물며 등을 돌렸다.
“한 엄마가 끝까지 아이 손을 못 놓았어요. 그래서 제가 화를 냈죠. 얼른 일어나라고. 그렇게 아이들을 놓고 나와서 밥을 먹는데 밥이 안 넘어가더라고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뭘 해도 학교가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최후의 수단’이었던 거예요.”(이은자 씨)
소풍을 가는 줄 알고 따라나섰던 아이들이 교육청에 덩그러니 남겨진 지 3일째 되던 날. 엄마들도 교육청 안으로 들어가 함께 농성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3일이 지나고서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서울 시내 3곳에 특수학교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서진학교 건립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학교 건립 절차가 진행될수록 반대 목소리가 커졌다. 절정은 2017년 열린 두 차례 토론회였다. 그런데 2차 토론회에서 엄마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한 장면이 공개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특수학교 건립에 찬성하는 여론이 커지면서 국회와 시민사회, 교육부가 움직였다. 서진학교 탄생에 속도가 붙었다.
엄마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김 씨는 서진학교 설립 중 부산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유니버설 디자인’(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적용된 특수학교를 보고 돌아와 학교 측과 정보를 공유했다. 다른 엄마들도 틈틈이 서진학교 공사 현장이 보이는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메모를 공유했다. ‘오늘은 나무를 베었습니다’ ‘오늘은 포클레인이 처음으로 들어왔습니다’ 엄마들의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수시로 이런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학교가 거의 만들어졌을 때도 ‘엄마의 마음’으로 꼼꼼하게 살폈다. 돌발행동이 잦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을지 곳곳을 점검했다. 유리 창문에 강화보호필름을 붙이자고 제안한 것도 이들이었다. 그렇게 지난해 3월, 드디어 서진학교가 문을 열었다.
○ 후배 엄마들을 위한 ‘이어 달리기’
지난해 3월 문을 연 서진학교. 현재 169명의 발달장애인이 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서진학교는 유치원부터 고교 졸업 후 전공반까지 운영하고 있다. ㈜영화사 진진 제공
그럼에도 이들이 무릎을 꿇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다음 세대 부모들이 나와 내 자녀가 겪은 어려움을 또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내 자식을 위해 한 일이 아니었다.
엄마들은 “우리 모두 아이들을 일반학교에 보냈다가 상처 받은 경험이 있다”며 “하지만 그건 일반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이 나빠서 생긴 일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일반학교엔 장애 학생에 대한 인식도,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현실적으로 장애 학생이 비장애 학생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란 것이다.
“아이를 일반학교에 보내고 걱정이 돼서 종종 학교를 찾아갔어요. 복도에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 늘 고개를 숙이고 있었죠. 그러다 중학교 1학년 때 운이 좋게 특수학교에 자리가 생겨 전학을 갔는데요. 등교한 첫날, ‘잘 오셨습니다’라는 선생님 한마디에 마음이 사르르 녹더라고요. 어디를 가도 거부당하던 우리 딸을 이렇게 환영해주다니! 다른 집 아이들도 이런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조부용 씨)
“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아이가 어릴수록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아이 상태를 좋아지게 하고 싶어서 병원과 치료 센터를 드나들기 바쁘거든요. 특수학교 세우는 일까지 어떻게 신경 쓰겠어요. 저도 그랬고요. 그래서 이런 일은 우리 같은 ‘선배 엄마’들이 나서줘야 해요. 지나가다 다른 아이들이 서진학교 다니는 걸 보면 얼마나 뿌듯한데요.”(정난모 씨)
엄마들은 스스로를 ‘계주 선수’에 비유했다. 앞서 장애인 자녀를 키워낸 선배 엄마들이 건넨 바통을 이어받아 열심히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음 세대 엄마들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이어 달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 아직 끝나지 않은 엄마들의 꿈
영화 ‘학교 가는 길’에는 특수학교 건립을 위해 고군분투한 엄마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장애아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엄마들. 조부용 씨는 2018년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삭발도 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삭발을 앞두고 딸에게 말했어요. ‘현정아, 이제 엄마가 머리를 깎을거야. 놀라면 안 돼’ 하고요. 삭발의 의미를 알 리가 없는데도 딸이 그러더라고요. ‘엄마. 하지 마’.” 그래도 조 씨는 눈을 감고 머리를 밀었다.
자식 때문에 머리를 밀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장애 아이를 낳기 전까지 모두가 평범한 주부이자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왜 우아하게 차 마시는 학부모 모임에 나가는 대신 거리에서 싸워야 하나.’
“하지만 우리 딸 덕분에 제가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됐잖아요. 그걸로 충분해요.”(장민희 씨)
이들은 이제 특수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인들이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일을 한다. 장애인 복지의 궁극적인 목적인 ‘자립’을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조 씨와 이 씨는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 교육 강사로도 활동한다.
“무슨 수를 써도 장애인인 제 아들을 비장애인으로 바꿀 수는 없어요. 그래서 세상이 바뀌어야 해요. 제가 몸으로 부딪치는 만큼 바뀌더라고요. 힘들어도 주저앉을 수가 없어요.”(김남연 씨)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