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보자(araboja) ESG 〈1〉
소개팅을 앞두고 가장 먼저 신경 써서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어색한 분위기를 한번에 날릴 수 있는 기가 막힌 농담?
얼마나 착실하게 학자금 대출을 갚고 저축해왔는지 보여 줄 통장 사본?
이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선 신경 써야 할 것은 만나는 장소와 시간에 적절하고 깔끔한 옷차림이 아닐까. 산에서 처음 만나는 게 아니라면, 취미가 등산이라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카페나 음식점에 등산복을 입고 나가는 것은 조금 난감할 수 있는 것처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소개팅 옷차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기업이 투자자와 만나는 첫 인상이란 점에서 ESG가 잘 차려입은 패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SG를 앞세워야 블랙록 같은 글로벌 기관 투자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지금 패션업계에 부는 ESG 패션은, 이제는 추억으로 사라진 ‘아나바다 운동(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처럼 단순히 재활용(리사이클)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더 부과해 한 단계 ‘업(Up)’ 시키는 ‘업사이클’이란 점이 특징이다.
화장품 용기는 온도, 습도를 유지해야 하고 미생물 등으로부터 화장품이 입을 손실이나 오염을 방지해야 하지만 또 가벼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플라스틱 사용이 많은 편이다. 지난해 38조 원 규모에 달하는 세계 화장품 용기 시장의 58.6%가 플라스틱이다.
SK케미칼의 재활용이 눈에 띄는 것은 화학적 재활용을 통해 원재료 단계로 플라스틱을 되돌린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플라스틱 재활용은 페트병 등을 수거해 부수고 쪼개 제품 전단계로 플라스틱을 되돌려 재사용하는 물리적 재활용이 이뤄져왔다. 다만 물리적 재활용을 거치면 색깔이 생기고 어두워보이기 때문에 투명한 용기를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섬유나 음료수병 등의 재활용에 한정됐다. SK케미칼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제품 전전 단계인 원료 상태로 되돌려 플라스틱을 만드는 방법이다. 때문에 화장품 용기 등으로 영역을 넓히는 것이 가능해진다. SK케미칼이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화장품 용기는 올해 3분기(7~9월) 본격적인 상업생산이 이뤄질 예정이다.
동네 친구와 만나기 편한 후드티, 맨투맨, 조거팬츠 등을 찾는다면 제주도산(産) 대신 ‘메이드 인 서울(made in seoul)’ 제품이 있다. 효성티앤씨가 서울 금천·영등포·강남 3개구에서 수거한 페트병으로 만든 섬유 ‘리젠서울’을 받아 플릿츠마마가 만든 ‘러브서울’ 에디션을 3월 선보였다. 플릿츠마마 홈페이지 등에서 5만~6만 원대로 구매가 가능하다.
페트병이 의류가 되는 과정은 어렵지 않다. 우선 수거해 온 페트병을 칩으로 잘게 쪼갠다. 이 과정을 플레이크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해외에서 수입해왔지만 삼다수 에디션과 러브서울 에디션은 효성티앤씨의 구미 공장 옆에 있는 협력사에서 맡는다. 수입했을 때보다 물류 비용 등이 절감되는 효과는 덤이다. 그렇게 쪼갠 플라스틱 조각에 불순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그렇게 걸러낸 플라스틱 칩을 고열로 녹여서 폴리에스터 실(원사)로 뽑아낸다.
이렇게 제주도, 서울 등에서 주워온 페트병으로 섬유 원료를 짜내고 있는 기업 효성티앤씨는 독자들에게 조금 낯설 수도 있는 기업이다. 그렇다고 경알못이라 자책하진 말자. 효성티앤씨는 주로 수영복, 스타킹 등 신축성이 필요한 의류에 쓰이는 스판덱스나 강도 높은 합성섬유 폴리에스터, 나일론 원사 등을 제조해 의류제조사에 파는 ‘B2B(기업과 기업 간의 거래)’기업이라 그런 것이니깐.
얼핏 비밀번호처럼 들리는 G3H10은 그린(Green) 휴먼(Human) 하모니(Harmony) 등 환경, 지속가능성을 상기시키는 단어들을 모아놓은 의미기도 하지만, 브랜드를 담당하는 팀이 공(G)덕역 3번 출구에 위치한 효(H)성 빌딩 10층에 있어서기도 하다. 50만 원을 모으려던 펀딩에 2900만 원(5805%)이 쏠리는 대박을 친 효성티앤씨는 17일부터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무지 반팔티 펀딩에 들어간다고 하니 편하게 입을 수 있는 ESG 패션을 찾는 독자라면 참고하자.
옷을 다 입었다면 이제 밖으로 나가야지. 마지막은 가방과 신발이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