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미국 본토로 재배치될 아프가니스탄 주둔 군인들이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미국 육군]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의 안보 상황은 아직도 복잡하고 엄혹하며 테러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프간 주둔 외국 군대의 철수는 책임 있고 질서 있게 이뤄져야 하며, 테러 조직들이 이 혼란을 이용해 득세하지 않게 해야 한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4월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 주둔 미군의 완전 철수 계획을 밝히자 내놓은 성명의 일부다. 바이든 대통령은 5월 1일부터 9월 11일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했고, 나토(NATO)도 미국과 함께 아프간 주둔 병력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9월 11일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일명 쌍둥이 빌딩)와 워싱턴 국방부 건물에 항공기로 동시 다발 테러를 감행한 날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선언은 올해 9·11테러 20주년을 맞아 아프간 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며, 자오 대변인의 성명 내용은 중국 정부가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를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각국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에 대해 패권 유지를 위한 ‘제국주의’라며 강력하게 비판해왔다. 그런데 자오 대변인의 성명 내용으로 볼 때 중국 정부는 미군 철수를 매우 아쉬워하는 듯하다.
아프간 전쟁으로 안보에 무임승차했던 中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이런 아이러니한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인 아프간전을 치르면서 엄청난 국력을 소모해온 것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려왔다. 미국은 9·11테러가 발생하고 한 달쯤 뒤인 같은 해 10월 7일 알카에다를 제거하고 알카에다를 비호해온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아프간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은 전쟁 한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탈레반은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버텼다. 게다가 미국은 알카에다 우두머리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했으나 알카에다를 발본색원하지 못했고,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까지 아프간에서 준동해왔다. 미국은 아프간전을 치르면서 지금까지 20년간 2조 달러(약 2241조6000억 원)의 전비를 투입했다. 미군 24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2만여 명이 부상했다.
미국이 ‘아프간 수렁’에 빠져 있는 동안 중국은 제2 경제대국으로 떠올랐고, 군사력을 증강해 남중국해는 물론 인도양까지 진출했다. 한마디로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지난 20년간 벌인 아프간전이 ‘호재’였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아프간에 천문학적 비용과 군사력을 쏟아붓는 동안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등 어부지리를 얻어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에서 철군하고 앞으로 중국과의 경쟁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 정부로선 미국의 아프간 철군이 ‘악재’가 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 덕분에 안보에 무임승차해온 중국이 더는 이득을 얻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무엇보다 신장웨이우얼(위구르)자치구의 분리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벌여온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 아프간을 근거지 삼아 세력을 크게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경계해왔다.
反中 무장 저항 단체 ETIM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중국과의 무력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 [ETIM 트위터]
위구르족 청년들을 중심으로 1990년 설립된 ETIM은 ‘동투르키스탄’이라는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중국 관공서와 경찰서를 습격하고 테러 공격까지 감행하는 등 무장 저항 운동을 해왔다. 이에 중국 정부는 ETIM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무자비하게 소탕작전을 벌였으며, 그 결과 ETIM 조직원은 대거 아프간, 파키스탄, 터키 등으로 피신하거나 망명했다.
ETIM은 2000년대부터 탈레반과 알카에다, IS 등과 연대하면서 지금까지 반중(反中)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IS는 같은 이슬람 수니파인 ETIM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위구르족을 탄압해온 중국 정부에 상당한 반감을 보이고 있다.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 중국 정부와 투쟁하는 위구르족 무슬림은 모두 ‘수니파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알카에다와 IS는 이미 중국을 상대로 지하드(聖戰)를 선언한 상태다. 탈레반은 미군이 철수할 경우 아프간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은 현재 아프간 남부지역을 비롯해 전체 영토의 61%를 점령하고 있으며, 북부지역으로 세력을 확대 중이다. 이 경우 아프간은 테러 조직들의 ‘해방구’가 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또 76㎞에 달하는 아프간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와칸 회랑’에 군사 기지까지 만들어 ETIM 조직원들의 침투와 탈출을 막기 위한 군 병력을 배치했다. 중국 정부가 아프간에 자국군을 배치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아프간 북부 바다흐샨주에 위치한 와칸 회랑은 북쪽으론 타지키스탄, 남쪽으론 파키스탄, 동쪽으론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와 맞닿아 있다. 1개 대대 500여 명이 주둔할 수 있는 이 기지에는 헬기 이착륙장을 비롯해 각종 감시 첨단 장비도 갖춰져 있다. 또한 타지키스탄에 군사기지를 설치했으며 파키스탄에도 군사기지 설치를 추진 중이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아프간 정부군의 산악 부대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간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검토하고 있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는 “중국이 미군 철수 후 아프간의 혼란이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아프간에 평화유지군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쑨치 중국 상하이 사회과학아카데미 연구원도 “아프간 정부군은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중국이 자국민과 기업의 안전 및 이익을 지키기 위해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도 피해가지 못한 ‘제국의 무덤’
중국 인민해방군 신장군구 병사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홈페이지]
특히 중국 정부는 ETIM이 세력을 확장할 경우 지금까지 야심차게 추진해온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일환으로 파키스탄 과다르항에서부터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카스(카슈가르)까지 총길이 3000㎞의 경제 회랑을 건설하고 있는데, ETIM이 경제 회랑을 지나가는 송유관 등에 테러 공격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 기업들은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남동쪽으로 40㎞ 떨어진 메스 아이나크 구리광산 개발에 30억 달러(약 3조3600억 원)를 투자하는 등 광물자원에 눈독을 들여왔다. 중국 정부가 ETIM의 세력 확산을 막기 위해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미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ETIM을 테러단체 명단에서 삭제했다. 철군 이후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보비 고시 미국 블룸버그 통신 외교담당 칼럼니스트는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중국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면서 “중국은 ETIM이 아프간을 근거지로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침투하거나 세력을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프간은 그동안 ‘제국의 무덤(graveyard of empires)’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19세기 대영제국은 제정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으로 불리는 패권다툼을 벌인 끝에 아프간을 차지했지만, 결국 아프간군에 패해 철수해야 했다. 옛 소련도 1979년 아프간을 침공했지만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의 강력한 저항으로 1989년 철군하고 말았다. 당시 소련군은 10만 병력과 840억 달러(약 94조1300억 원) 전비를 투입했지만 전사 1만5000명, 부상 4만 명 등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만 입었다. 결국 아프간 침공은 소련이 붕괴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미국도 아프간에서 철군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이 아프간에 발을 들이민다면 같은 역사를 반복할 수도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88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