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후 개혁해야 대선 승리 가능해”
안 대표는 통합이 목적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야권 지지층 확장을 위한 방편일 뿐이라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대선에 임박해 통합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개혁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단 이유에서다. 안 대표는 “4·7 재보궐선거는 문재인 정권을 평가하고 심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야당의 승리가 아닌 여당의 패배였다”면서 “불과 1년 전 180석을 차지한 여당은 이념과 진영에 매몰돼 중도층을 잃었다. 제1야당이 노선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포문을 열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5월 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야권 대통합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지지층 확장하려면 당 대 당 통합해야”
통합에 대한 당원들 생각은 어땠나.“찬반이 갈렸지만 의견은 같았다. 첫째로 야권 통합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대선이 10개월 남았다.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도록 야권 지지층을 확대하는 통합이 돼야 한다. 둘째로 중도실용 정치 노선을 지켜야 한다. 중도실용 노선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제1야당의 노선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통합 이후 계속해서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유능한 정치세력, 도덕적 정치세력, 공정한 정치세력, 국민통합을 하는 정치세력,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세력이 돼야 한다.”
야권 지지층 확대를 첫째로 꼽았는데 우려하는 점은 없나.
“야권 지지층을 확대하려면 당 대 당 통합이 필요하다. 지분을 요구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당 대 당 통합이 이뤄져야 사람들이 제1야당의 노선이 확장됐다고 느낀다. 정당에는 국회의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직자와 당원, 그리고 훨씬 많은 수의 지지자가 있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당은 지지율 3위 정당이다. 이들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통합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민의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101석)과 국민의당(3석)의 의석 수 차이가 큰 만큼 흡수 통합 방식으로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 대표는 야권 통합을 단순히 ‘101+3’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가 판이했다고 한다. 부산은 야권 지지성향이 강한 도시임에도 박형준 시장이 50대 이상 유권자 집단에서만 이겼다. 서울은 40대를 제외한 전 세대에서 이겼다. 단일화 효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더라. 나를 지지한 2030세대와 중도층, 무당층 유권자가 야권 단일 후보에 표를 준 거다. 2030세대가 보수화됐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착각이다. 2030세대는 보수화된 게 아니라 실용적 판단을 내렸을 뿐이다.”
통합 상대인 국민의힘이 선거 후 ‘도로 새누리당’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전당대회와 당대표 경선을 앞두고 있다. 당대표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다 같을 수는 없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것은 정당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6월 초쯤 지도부가 정해지면 이런 부분도 정리될 것이라 기대한다.”
“국민의당은 통합 준비 마쳤다”
안철수 대표가 3월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포함한 대통합을 통해 더 큰 2번을 반드시 만들어내겠다”고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국민의힘이 선거 이후 쇄신할 부분은 없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지난 재보선에 대한 평가회를 열어야 한다. 선거에 졌을 때만 복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긴 경우에도 승리 이유를 알아야 내년 대선에서 되풀이할 수 있다. 유권자들이 무능하고 위선적인 정부에 분노를 표출했다. 분이 풀렸다면 야당은 뭐가 다른지 살피지 않겠나. 혁신이 필요하다고 한 이유다. 야권은 무능한 정부와 대비되게 유능해져야 한다. 내가 혁신 키워드 5개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혁신 의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
“내가 언급한 공정, 통합 등의 가치들을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일단 합당 후 만들어질 당헌이나 당규에 이를 담는 작업이 필요하다. 통상적으로 통합을 하면 여러 당헌이나 당규가 추가된다. 해당 당헌과 당규가 단순히 선언으로 그치지 않게 하려면 이를 책임지고 실행할 조직이 필요하다. 당대표 직속 특별위원회를 둬 이를 추진하게 만들어야 한다.”
통합 조건으로 당헌 변경과 조직 개편을 내걸었다. 현실적으로 국민의힘 차기 지도부가 정해진 후에나 합당이 가능해 보인다.
“국민의당은 준비를 마쳤다. 반면 국민의힘 내부에서 통합 시기와 관련해 여러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당권 주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전당대회 전 통합할 경우 국민의당 당원들이 (당대표 선거)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당권 주자들이 있다. 당권 주자들 사이에서도 (전당대회 이전 통합에 대해) 찬반이 갈리는데, 당연히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이 부분이 정리돼야 우리도 통합을 추진할 수 있다. 국민의힘 내에서 의견을 모으는 게 시급하다.”
여권과 이슈 주도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통합이 끝이라면 서로 의논해 좋은 시간을 찾는 게 전략적으로 맞다. 현실은 다르다. 통합 후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시 민주당을 중도실용 정치를 하는 정당으로 바꾸려 했지만 단순히 (물리적으로) 합치는 데 그쳤다. 앞서 얘기한 야권 지지층 확대·중도실용 노선·지속적 혁신 3가지 중요 원칙에 대해 잘 몰랐다. 정치 경험도 부족했다. 지금은 다르다. 지난 9년간 경험을 통해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게 됐다. 현역 정치인 중 독자적으로 창당해 38석 규모의 정당, 즉 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본 정치인은 내가 유일하다. 정치력은 증명됐다.”
“尹과 함께 못 한다? 누구도 단정 못 해”
안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후보 단일화 중인 3월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일 후보가 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포함한 야권의 모든 분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통합을 통해 더 큰 2번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당초 내걸었던 3단계 야권 대통합 방정식에 변화는 없을까. 대화 주제가 윤 전 총장으로 넘어가자 안 대표는 단답을 하거나 “글쎄, 잘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윤 전 총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정권교체 열망을 담고 있는 분이다. 그간 국민이 마음 둘 곳이 없었는데 윤 전 총장에게 모인 것이 아니겠는가. 정치를 할지 안 할지는 그분이 판단하겠지만, 어떤 경우든 정권교체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역할이라고 하면?
“정치를 한다면 직접 대선후보로 뛰는 거다. 정치를 하지 않더라도 손 놓고 물러나선 안 된다. 야권 대선후보가 이길 수 있도록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안 대표를 향해 날 선 말을 많이 한다.
“하하하하하.”
안 대표와 윤 전 총장은 함께하지 못 할 거라던데.
“세상 어느 누구도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윤 전 총장 처지에서 국민의힘 입당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글쎄. 내가 윤 전 총장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바깥에 적을 둔 채 야권 대통합을 구상할 경우는 어떤가.
“국민의힘에 들어가 통합하든, 바깥에서 통합하든 궁극적으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야권 단일 후보로 나와야 한다. 내가 ‘통합’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나. 통합은 범위가 넓다. 가장 약한 형태의 통합이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왔던 후보 단일화다. 정당이 달랐지만 단일화가 됐다. 반대로 가장 강한 형태의 통합은 국민의힘에 들어와 경선을 치르는 방식이다.”
안 대표는 제3의 방법도 이야기했다. 미국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처럼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은 채 경선을 치르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샌더스 상원의원은 노동, 의료, 복지 분야에서 미국 민주당 정치인들보다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온 인물이다. 그는 2016년과 지난해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유력 대선주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경쟁하며 ‘샌더스 돌풍’을 일으켰다.
안 대표는 앞서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국면이던 1월 19일 “미국 민주당은 당원이 아니어도 모든 후보에게 문호를 개방해 공화당 후보에 대항하는 필승후보를 선출해왔다”고 말하면서 개방형 경선을 주장했다. 1 대 다(多) 경선이 본인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의힘 후보를 확정한 뒤 논의하자”며 이를 일축했다.
“중간 형태도 있다. 미국 민주당 같은 경우 민주당원이 아니더라도 원한다면 누구나 대통령 경선에 참여할 수 있다. 무소속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2등을 하지 않았나. (윤 전 총장의 경우도) 국민의힘이 관리하는 개방형 경선을 할 수 있다. 이렇듯 (통합에는)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다. 야권 단일 후보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윤 전 총장이 선택하는 방향에 따라 가능성을 열어놓고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안 대표의 경우 상황에 따라 내년 대선의 주연 역할도 고려하나.
“글쎄. 당장 내가 할 일은 통합이라고 생각한다.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 지금 머릿속에는 통합을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생각만 있다.”
“경제 규모 10위권인데 백신은 100위권”
여당이 먼저 지도부 개편을 마쳤다.“당대표 선거는 박빙이었지만 최고위원은 친문(친문재인) 일색이다. 변할 수 있을까. 정부 여당이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정책을 바꾼다면 국민과 본인들에겐 좋은 일이다. 국민 한 사람으로서 모든 권한을 가진 정부 여당이 움직여야 대한민국이 바뀐다고 전하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임기가 1년 남았고 재선에 도전할 것도 아니다.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한다. 양산 사저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하자 직접 대응했다. 사용한 표현도 대통령이 쓸 표현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지금이라도 열린 마음으로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재풀을 과감히 넓혔으면 한다. 내편이 아니어도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사람을 기용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신뢰 또한 높아지지 않겠나. 지금 방식대로 가면 지지율이 떨어지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안 대표는 “정부는 백신 확보 현황과 예상 접종일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경제 규모 10위권 나라가 백신 문제에서는 100위권 바깥이라는 게 말이 되나. 정부가 무능하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무능한데 거짓말하는 것이 제일 나쁘다. 국가는 특히 그래선 안 된다. 정부는 기업이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와 학계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숨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88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