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이하가 보이스피싱 피해자이자 피의자
악용 가능성 등만 우려하다간 영원히 못 막아

정원수 사회부장
지난해 1월 20일 스물여덟 살의 취업준비생 B 씨는 “대규모 금융사기에 연루됐고,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처벌받게 된다”라는 ‘가짜 김민수 검사’의 말에 속아 420만 원의 피해를 입었다. B 씨는 사흘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B 씨의 아버지가 ‘내 아들을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를 잡을 수 있을까요’라는 청와대 청원을 올렸다. “아들이 사기를 당한 420만 원에 대한 가짜 김민수 검사의 몫이 고작 50만 원이고, 그 돈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아버지의 한탄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
학자금 마련을 위해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었던 스물두 살의 대학생 C 씨. “길거리에서 현금을 받아 계좌로 입금하면 수고비를 주겠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유혹에 지난해 7월 편의점 앞에서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건넨 916만7000원을 전달받았다. 수고비 56만7000원을 뺀 860만 원을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지정한 계좌에 입금했다. 위험한 아르바이트를 두 차례 더 했던 C 씨는 같은 해 10월 1심에서 사기방조죄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올 3월 항소심 재판부는 C 씨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정부나 금융당국, 국회가 그동안 노력을 전혀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범죄의 비극은 완전히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도 해결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는 데 있다. 범죄자들은 무서운 속도로 법망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와 취약계층만을 공략해왔다. 이 범죄 피해자의 약 90%는 서민층이다.
지난해 6월 관계부처 합동 종합대책엔 피해자의 중과실이나 고의가 없다면 금융기관이 원칙적으로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안이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은행에 전화를 하면 “우리 책임도 있다”며 피해액의 절반을 입금해주는 영국 사례 등을 참고했다고 한다. 국회는 금융기관의 피해 배상 책임과 관리 감독 의무를 강화하는 관련법안 8건을 발의했다. 과실이 없는 기관에 책임을 지운다는 법적 논란, 악용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로 논의가 1년 가까이 답보 상태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2010년 5000여 건에서 지난해 3만1000여 건으로 10년 만에 6배로 늘었다. 획기적인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지 않으면 이 추세를 꺾을 수 없다. 지금 막지 못하면 앞으로 더 어려울 수 있고, 그 사이 수많은 취약계층, 특히 청년층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