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년, 무너진 육라밸]“자녀돌봄 애썼는데” 억울한 아빠 맞벌이 아빠 육아시간 18% 늘어… “일과 병행 너무 힘들다” 토로 직장인 아빠 70% “가정에 미안”… 아빠 64% “피곤”- 47% “화 늘어” 엄마보다 낮지만 무시못할 수준… 전문가 “남성 육아휴직 확대해야”
6세 딸을 키우는 아빠 안정훈(가명) 씨는 최근 부인의 “좀 더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라”는 원망에 울컥 서운했다. 안 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줄곧 주 2, 3회씩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집에 있는 날에는 매일 출근하는 부인을 대신해 온종일 자신이 딸을 돌본다. 안 씨는 “코로나19 이전은 몰라도 지금은 가사 일도 많이 한다”며 “서로 힘들다 보니까 자꾸 다툴 일이 느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재택근무해서 편하겠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아이는 놀아 달라, 챙겨 달라 칭얼대고, 회사는 회사대로 집에서 노는 것 아니냐며 눈치를 준다. 중간 관리자 급이라 할 일은 태산인데 어디에도 제대로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아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 직장인 아빠 70% “코로나로 가정에 미안”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CTMS)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아빠의 70.7%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2020년 12월∼2021년 2월) 동안 일과 육아의 병행이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맞벌이 아빠의 주중 평균 자녀 돌봄 시간은 코로나19 이전보다 18.4%, 외벌이 아빠도 19.5%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맞벌이인 아빠 박정규(가명·46) 씨는 코로나19 이후에 이전보다 2시간 이른 오전 5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있다. 일찍 출근해 일을 하면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유연근로제’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부인이 가게를 하기 때문에 등교가 들쑥날쑥하는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돌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박 씨는 “그래봤자 하루 한두 시간 더 애를 보는 거지만 주말까지도 ‘혼자만의 시간’이 확 줄어드니 체감하는 힘겨움은 확실히 크다”고 털어놨다.
자녀 돌봄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는 외벌이 아빠도 마냥 편하지는 않다. CTMS 설문조사에서도 직장인 아빠의 70%가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족과 자녀에게 더 신경 쓰지 못해 미안했다”고 토로했다.
○ “남성의 육아 위한 사회적 대책 마련해야”
자녀 돌봄을 위해 육아휴직이나 재택근무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인 아빠들도 적지 않았다. 노승철(가명) 씨는 지난해 말 태어난 아이를 위해 육아휴직을 신청하려 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회사 분위기 탓에 말도 꺼내기 어려웠다. 노 씨는 “한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아이는 와이프가 낳았는데, 왜 당신이 휴직하느냐’는 핀잔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책임연구원은 “아빠의 돌봄 참여는 돌봄 휴가나 육아휴직을 쓸 때 회사에서 대체 인력을 마련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남성 육아휴직이 공기업이나 일부 대기업에 국한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유채연 ycy@donga.com·이윤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