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년, 무너진 육라밸]휴교로 늘어난 돌봄 부담은 엄마 몫 휴교 자녀에 나흘내내 삼시세끼… 잔소리 늘어 자녀와 관계도 나빠져 직장맘 52% 재택근무때도 육아… 아빠 참여 늘었지만 18% 수준 돌봄 맡길 사람 못구한 맞벌이는… 아이들만 집에 있는 상황 벌어져
인천에 사는 워킹맘 김경아 씨(44)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에 들어간 뒤 ‘돌봄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밥 차린다’를 줄인 돌밥돌밥은 주부들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쓰는 신조어. 김 씨도 요즘 “잠깐 자리에 앉아 허리를 펼라치면 밥할 시간이 돌아온다”며 한숨지었다.
“초등학생 2명이 같이 등교하는 날이 딱 하루만 겹쳐요. 나흘 내내 세 끼를 집에서 다 해야 하는 거죠. 새벽부터 서둘러도 아침에 일에 집중할 시간이 1, 2시간밖에 안 나요. 정말 엄마들이 왜 여기저기가 아픈지 알 거 같아요.”
재택근무를 하는 입장에서 계속 애들만 챙길 수도 없는 노릇. 김 씨는 결국 최근 아이들을 오후엔 ‘학원 뺑뺑이’를 돌리고 있다. 김 씨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사교육비가 2배 이상 늘어난 거 같다”며 “신체적 피로는 둘째 치고 경제적 정신적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했다.
○ 아이를 돌보는 건 여전히 엄마의 몫
실제로 자녀의 교육·보육시설이 문을 닫았을 때 ‘낮 시간에 누가 아이를 돌봤느냐’는 질문에 전업주부의 89.2%가 ‘본인’이라고 답했다. 맞벌이인 경우에도 엄마의 32.7%가 자녀를 챙겨야 했다. 맞벌이의 경우 아빠는 11%, 외벌이인 경우엔 아빠의 3%만이 아이를 돌봤다고 말한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물론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할 경우엔 아빠의 돌봄 참여가 확실히 늘어났다. 17.6%가 아이를 돌봤다고 답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한 직장인 엄마의 52.4%가 아이를 돌봤다고 답한 것과 여전히 격차가 크다.
실제로 이번 서울대 조사에서 직장인 부모들의 73%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계속해서 직장에 출근했다고 답했다. 재택근무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82%가 “직장에서 재택근무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 “아이 홀로 두고 CCTV 켜놓고 출근”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우는 엄마 서은미(가명) 씨도 집안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아이를 집에 홀로 뒀다고 한다. 서 씨와 남편 모두 아침 일찍 직장에 출근하는 데다 따로 돌봄을 맡길 친척도, 사람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출근길에 나서지만 줄곧 CCTV만 바라보며 마음을 졸인다. 서 씨는 “부부가 먼저 출근하다 보니 아이가 홀로 등교 준비를 한다. 오후에도 애가 집에 혼자 있는데,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나 싶어서 운 적이 많다”고 했다.
전업주부의 스트레스도 극심하다. 전업주부는 기존에도 자녀 돌봄의 부담이 집중돼 힘겨웠지만, 코로나19 이후 돌봄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었을 뿐 아니라 일의 강도도 훨씬 커졌다. 설문에 응한 전업주부는 돌봄 시간이 1일 평균 약 3시간씩 늘어 총 11시간에 이르렀다.
돌봄노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이토 펭 캐나다 토론토대 사회정책학과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선 직장은 부모들이 자녀를 돌보도록 재택근무와 출퇴근 시간 조정 등 유연한 업무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며 “가족을 돌보는 직장인이 일터에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윤태 oldsport@donga.com·유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