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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밥돌밥’ 미로에 갇힌 엄마… 전업주부 육아 하루 8→11시간 급증

입력 | 2021-05-10 03:00:00

[코로나 1년, 무너진 육라밸]휴교로 늘어난 돌봄 부담은 엄마 몫
휴교 자녀에 나흘내내 삼시세끼… 잔소리 늘어 자녀와 관계도 나빠져
직장맘 52% 재택근무때도 육아… 아빠 참여 늘었지만 18% 수준
돌봄 맡길 사람 못구한 맞벌이는… 아이들만 집에 있는 상황 벌어져




“전업주부인 친구가 ‘돌밥돌밥’이라더니, 애들 끼니 챙기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인천에 사는 워킹맘 김경아 씨(44)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에 들어간 뒤 ‘돌봄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밥 차린다’를 줄인 돌밥돌밥은 주부들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쓰는 신조어. 김 씨도 요즘 “잠깐 자리에 앉아 허리를 펼라치면 밥할 시간이 돌아온다”며 한숨지었다.

“초등학생 2명이 같이 등교하는 날이 딱 하루만 겹쳐요. 나흘 내내 세 끼를 집에서 다 해야 하는 거죠. 새벽부터 서둘러도 아침에 일에 집중할 시간이 1, 2시간밖에 안 나요. 정말 엄마들이 왜 여기저기가 아픈지 알 거 같아요.”

자녀들과의 관계도 이전보다 더 나빠진 느낌이다. 온라인수업을 받다 보니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학습 태도에 잔소리만 늘어갔다. 김 씨는 “그나마 실시간 원격수업은 곧잘 듣고 있는데, 영상만 틀어주는 수업은 애들이 딴짓하기 일쑤”라며 “일을 하다가도 몇 번씩 들어가서 꾸중을 하다 보니 애들도 힘들어한다”고 털어놨다.

재택근무를 하는 입장에서 계속 애들만 챙길 수도 없는 노릇. 김 씨는 결국 최근 아이들을 오후엔 ‘학원 뺑뺑이’를 돌리고 있다. 김 씨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사교육비가 2배 이상 늘어난 거 같다”며 “신체적 피로는 둘째 치고 경제적 정신적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했다.

○ 아이를 돌보는 건 여전히 엄마의 몫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CTMS)가 올해 3월 전국 만 0∼12세 자녀를 둔 부모 2016명(남성 1014명, 여성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코로나19와 한국의 아동 돌봄’에서는 부모들의 자녀 돌봄 고충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특히 여전히 아이를 키우는 책임의 무게추가 엄마 쪽으로 기울어진 한국 사회에서 코로나19는 엄마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실제로 자녀의 교육·보육시설이 문을 닫았을 때 ‘낮 시간에 누가 아이를 돌봤느냐’는 질문에 전업주부의 89.2%가 ‘본인’이라고 답했다. 맞벌이인 경우에도 엄마의 32.7%가 자녀를 챙겨야 했다. 맞벌이의 경우 아빠는 11%, 외벌이인 경우엔 아빠의 3%만이 아이를 돌봤다고 말한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물론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할 경우엔 아빠의 돌봄 참여가 확실히 늘어났다. 17.6%가 아이를 돌봤다고 답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한 직장인 엄마의 52.4%가 아이를 돌봤다고 답한 것과 여전히 격차가 크다.

재택근무마저 할 수 없는 맞벌이 부부는 더욱 고통스러웠다. 경기 고양시에서 다섯 살 쌍둥이를 키우는 최주현(가명·36) 씨는 지난해부터 남편과 매주 돌아가며 연차를 써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지방에 사는 데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이모님’도 고용할 수 없었다. 최 씨는 “어린이집은 긴급돌봄을 신청하면 휴원해도 등원시킬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눈치가 보여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애들을 집에만 내버려둘 수도 없어 주중에 3일은 긴급돌봄 등원하고, 2일은 남편과 내가 연차를 내 아이들을 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서울대 조사에서 직장인 부모들의 73%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계속해서 직장에 출근했다고 답했다. 재택근무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82%가 “직장에서 재택근무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 “아이 홀로 두고 CCTV 켜놓고 출근”

이렇다 보니 가정에서 보호자도 없이 만 0∼12세의 아동들만 집에 있는 일까지 자주 벌어졌다. 설문조사에 응한 부모의 약 40%가 “최근 3개월 사이에 아이들이 어른 없이 1시간 이상 있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물론 대부분 초등학생 이상이긴 했지만, 하루 평균 7시간 이상 아이들끼리만 있었던 경우도 14.2%나 됐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우는 엄마 서은미(가명) 씨도 집안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아이를 집에 홀로 뒀다고 한다. 서 씨와 남편 모두 아침 일찍 직장에 출근하는 데다 따로 돌봄을 맡길 친척도, 사람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출근길에 나서지만 줄곧 CCTV만 바라보며 마음을 졸인다. 서 씨는 “부부가 먼저 출근하다 보니 아이가 홀로 등교 준비를 한다. 오후에도 애가 집에 혼자 있는데,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나 싶어서 운 적이 많다”고 했다.

전업주부의 스트레스도 극심하다. 전업주부는 기존에도 자녀 돌봄의 부담이 집중돼 힘겨웠지만, 코로나19 이후 돌봄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었을 뿐 아니라 일의 강도도 훨씬 커졌다. 설문에 응한 전업주부는 돌봄 시간이 1일 평균 약 3시간씩 늘어 총 11시간에 이르렀다.

아이 셋을 키우는 전업주부 주은혜(가명·45) 씨는 “학교는 긴급돌봄이 맞벌이 부부만 가능하다고 제한한다. 남편은 일에 바빠 육아는 모르쇠로 일관한다”며 “애들한텐 미안하지만 그나마 학원에 가 있을 때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하소연했다.

돌봄노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이토 펭 캐나다 토론토대 사회정책학과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선 직장은 부모들이 자녀를 돌보도록 재택근무와 출퇴근 시간 조정 등 유연한 업무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며 “가족을 돌보는 직장인이 일터에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윤태 oldsport@donga.com·유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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