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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부동산, 할 말 없는 상황…보선서 죽비 맞았다”

입력 | 2021-05-10 13:11:00


“가장 아픈 곳은 부동산시장 안정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의 정책에 대한 평가를 요구하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어 “보궐선거에서도 엄중한 비판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25번에 걸쳐 쏟아냈던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기자회견 전 기조발언 등을 통해 앞으로 추진해나갈 부동산 정책 방향에 대해 3가지를 제시했다. 부동산 투기에 대한 철저한 차단과 공공주도 주택공급 계획의 차질 없는 추진, 실수요자의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 등이다. 이전에도 문 대통령이 강조해왔던 것들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 결은 조금 달라졌다. 부동산 투기 억제에 대해서는 “부동산 부패”로 규정한 뒤 공직자와 공공기관 직원들의 근본적인 투기 방지책을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방침을 밝혔다.

주택공급과 관련해서는 “민간의 주택공급에 더해 공공주도 주택공급 대책을 계획대로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언급함으로써 공공주도에만 초점을 맞췄던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재건축·재개발 완화 움직임에 화답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무주택 서민 등 실수요자 부담 완화는 여당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확대 방안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됐다.

● “4년간 가장 아픈 곳은 부동산 정책 실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2021.5.10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이날 재임 4년에 대한 평가를 묻는 첫 질문에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가장 먼저 꼽았다. 이어 “부동산 정책성과는 부동산 가격 안정으로 집약되는데 이를 이루지 못했고, 정부로서는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또 “LH 비리까지 더해지면서 엄중 심판을 받았다”며 “(참패로 끝난) 보궐선거는 정신 차리라는 ‘죽비’와 같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현 정부 출범 이후 4년간 20번이 훌쩍 넘는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집값은 크게 올랐다. 한국부동산원의 월간 주택가격동향조사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집값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부터 지난달까지 약 4년간 10.75% 올랐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5.39% 상승한 것을 비롯해 경기와 인천이 각각 18.48%, 14.76%씩 올랐다. 수도권 전체로는 17.00% 상승했다. 지방은 5.36% 올랐지만 지역별로 두 자릿수 이상 오른 곳이 속출했다. 특히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있었던 세종시는 무려 47.50% 폭등했다.

민간 조사에선 가격 오름폭이 훨씬 컸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이 기간 서울의 집값은 34.95% 올랐다. 또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록된 실제 거래가를 보면 4년 간 서울에서 아파트값이 2배 이상 뛴 곳이 적잖았다.

전세금도 뛰었다. 4년간 전국적으로 4.01% 올랐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6.37%, 경기가 5.76%, 인천이 9.83% 각각 올랐다. KB 조사 기준으로는 오름폭이 9.59%에 달했다. 또 실거래 자료를 살펴보면 상승률이 50%에 육박하는 단지들도 적잖았다. 특히 지난해 당정이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는 등 안정대책을 쏟아냈지만 부작용만 키웠다. 그 결과 새로 전셋집을 구하는 임차인들의 시름은 깊어졌다.

● “부동산 투기는 반드시 청산”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2021.5.10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이날 기조발언을 통해 부동산 투기 청산 방침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공직자와 공공기관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가 국민들 마음에 큰 상처를 준 것을 교훈 삼겠다”며 “투명하고 공정한 부동산 거래 질서 확립과 불법 투기의 근원을 차단하기 위한 근본적 제도개혁을 완결 짓겠다”고 밝혔다.

눈길을 끄는 것은 국토부 장관 내정자인 노형욱 후보자에 대한 선임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공직자 비리 논란의 진원지인 LH는 물론 국토부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불신 대상이 된 국토부와 LH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한데) 국토부 내부에서는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뒤 “그렇게 고심하면서 지금의 후보자를 발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공직자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활용해 재산상 이익을 얻을 경우 7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7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해충돌방지법’이 8년 만에 국회를 통과하는 등 다양한 후속조치가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또 LH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정비 작업도 이달 중 확정 공개될 예정이다.   

 경찰 주도의 ‘정부 합동수사본부’와 국세청, 금융감독위원회 등이 대거 공직자 부동산 투기 수사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취임 이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강조해왔던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상황 자체가 뼈아픈 정책 실패의 결과라 할 수 있다.  


● 민간 협력을 염두에 둔 주택공급 확대
문 대통령은 이날 다시 한 번 공공주도의 주택공급 확대를 강조했다. 다만 “민간의 주택공급에 더해”서라는 표현을 언급함으로써 공급 주체에 민간의 역할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변화가 눈에 띈다.

이는 공공주도 공급 대책의 핵심인 LH가 직원 땅 투기 의혹으로 불신을 받고 있는데다 ‘4·7 보궐선거’ 승리를 통해 서울시에 입성한 오세훈 시장이 민간주도의 공급 대책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규제 위주의 발언만 쏟아냈다. “부동산 가격 잡아주면 피자 한판씩 쏘겠다(2017년 7월 27일)”거나 “더 강력한 대책 주머니 속에 많다(2017년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 “현재 방법이 안 된다면 강력한 방안을 계속 강구해 반드시 가격을 잡겠다(2019년 11월 19일 ‘국민과의 대화’)”,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지지 않을 것(2020년 1월 10일 신년사)”, “부동산 대책이 시효를 다했다고 생각되면 보다 강력한 대책을 끊임없이 내놓겠다(2020년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 등과 같은 발언을 이어갔다. 모두 규제를 강조한 내용이다.

변화는 취임한 지 3년이 훌쩍 지난 지난해 7월 16일 21대 국회개원 연설에서 처음 나타났다. “주택공급 확대를 요구하는 야당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필요한 방안을 적극 강구하겠다”며 공급 관련 발언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방점은 투기 수요 억제에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본격적인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1월 11일 신년사에서 “주거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한 뒤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주택공급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1주일 뒤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도 “부동산 공급에 있어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로 나온 게 ‘2·4대책’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공급의 핵심은 공공주도였다. 그러나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3월 2일 LH 직원 땅 투기 의혹이 터지면서 정부 대책에 대한 불신이 커질 대로 커졌고, 추진동력은 크게 쪼그라들었다.

여기에 오 시장의 취임도 정부가 구상한 공공주도 공급 확대에 걸림돌이었다. 오 시장은 재개발·재건축 활성화와 뉴타운 정상화 등 민간주도의 공급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민간의 주택공급에 더해’라고 언급한 것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절충안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실수요자 부담 완화 위한 다양한 정책 지원
정부는 출범 이후 쏟아낸 각종 대책에서 실수요 부담 완화 위한 다양한 정책 지원을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이번에 다시 “무주택 서민, 신혼부부, 청년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실수요자의 부담을 완화하는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언급한 것은 여당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보궐선거 참패 직후 여당 내부에선 1주택자와 노령가구에 대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부담 완화와 청년층 등을 겨냥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요구가 거셌다.

2일 경선을 통해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의원을 중심으로 이같은 요구의 목소리가 커졌고, 정부도 이에 화답해왔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 등을 통해 “당정 협의를 긴밀하고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따라서 이달 중에는 관련한 조치들이 구체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