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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진 기자의 국방이야기]軍 백신동의율 86%가 불편한 이유

입력 | 2021-05-11 03:00:00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16일 국군수도병원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30세 이상 군 장병에 대한 AZ 백신 1차 접종은 이번 주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제공

신규진 기자

“지금은 누군가 강요한다고 해서 본인이 싫은데 억지로 맞고 하는 그런 군대가 아니다.”

30세 이상 군 장병에 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이 개시된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 국방부 관계자는 정례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군 내 접종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주장에 선을 그은 것.

당초 군인·경찰·소방·해경의 백신 접종은 다음 달부터 이뤄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말로 개시 일정이 한 달 이상 ‘급하게’ 당겨졌다. AZ 백신이 희귀 혈전증 등 부작용으로 논란이 되면서 방역당국이 접종 대상을 30세 이상으로 제한했고, 30세 미만의 사회필수인력 접종분이 군인 등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AZ 백신 접종을 개시한 경찰 내부에선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정부가 (경찰을) ‘마루타’ 취급한다”는 반발이 나왔다. 상대적으로 군은 조용했다.

정부의 ‘백신 접종 드라이브’에 군 수뇌부도 앞장섰다. 서욱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각 군 참모총장은 팔을 걷어붙이고 AZ 백신을 맞으며 ‘솔선수범’했다. 당초 국방부가 밝힌 AZ 백신 접종 동의율은 83%. 30세 이상 장병 12만6000여 명 중 10만5000여 명이 동의한 수치다.

각 군별, 부대별 동의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국방부는 개인이 자유롭게 접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안내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접종 개시 2주 차 땐 AZ 백신 부작용에 대한 불안감이 일부 해소되면서 동의율이 86%까지 올랐다고도 했다.

하지만 일선 부대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A부대에선 백신을 맞겠다는 부대원이 절반도 안 돼 동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대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B부대에선 애초 부대원 중 1명만 백신 접종을 신청했다가 나중엔 소수를 제외한 전 부대원이 접종을 희망하게 된 ‘기적 같은 일’도 펼쳐졌다.

한 군 관계자는 “상관이 ‘왜 너만 빠지려고 하느냐’고 말해 백신을 맞겠다고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일부 지휘관들은 부대별 접종 동의율을 비교하며 “솔선수범”을 언급하거나 “사익보다 국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등 접종을 압박했다고 한다. 기자에게 “꺼림칙하지만 지휘관이 맞는데 어떻게 안 맞겠느냐”는 자조 섞인 말을 건넨 이들도 있었다. 접종 동의서에 비동의 사유를 게재하는 점도 큰 부담이 됐다는 전언이다.

이후의 불안감은 오롯이 장병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갓 30세가 넘었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장병들은 극도의 공포마저 느낀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족들 만류가 심하고,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사비로 아스피린을 대량 구비해 놨다는 장병 가족들도 있다.

접종 후 부대 관계자가 “응급실에 가지 않을 정도면 경미한 것”이라고 해 고통을 감내하며 전전긍긍하는 장병도 상당수다. 다른 군 관계자는 “‘2차 접종을 포기하겠다’는 부대원들도 있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6일 기준 이상 반응은 20여 건으로 모두 경미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군 고위 관계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먼저 맞는 걸 선호하는 간부들이 많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여파가 심상치 않고 전국적으로 백신이 부족한 상황에서 백신에 대한 불안감은 소수의 ‘배부른 소리’라는 것. 지금까지 군 내 접종자 가운데 심각한 부작용 사례가 나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군 당국이 백신 접종에 대한 일선 부대원들의 우려를 세심하게 살펴보지 않았단 점에 대다수 군 관계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정부의 ‘백신 접종 드라이브’에 따라 초고속 접종이 이뤄지는데도 불안감을 해소할 만한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2월 장병 휴가가 재개된 뒤에도 격리 기간 등의 문제로 사실상 몇 달째 휴가를 쓰지 못하고 있는 군 간부들에게 적절한 ‘유인책’이 제공됐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군 조직에서 ‘일사불란함’은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자발적 충성이 아닌, ‘접종률 향상’이란 국가적 목표 앞에 일부 장병이 침묵을 강요받는 경직된 분위기는 장기적으로 조직의 사기를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누적된 불만이 분출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지휘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교훈은 최근 군 내 부실급식 논란에서도 고스란히 증명됐다.

국방부 관계자의 말과 달리, 아직도 많은 장병들은 지금의 군대를 “누군가 강요한다고 해서 본인이 싫은데 억지로 맞고 하는 그런 군대”로 보고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