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칼럼니스트
‘벽시계남’은 안목이 높고 집요하며 예산 면에서는 현실적이다. 설명이 이어졌다. “옛날 벽시계는 20세기 산업디자인의 명인이 디자인했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제가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가격대였어요.” 하긴 그는 비흡연자이고 술도 거의 안 마신다. 그는 겸연쩍은 듯 덧붙였다. “사다 보니 거실에만 5개고 다른 방에도 한두 개씩 걸려 있어요. 대신 요즘은 이런 물건이 인기라 해외직구하고 되팔아도 제값은 받아요.” 중고품 판매 사이트를 검색하니 그의 말 그대로였다. 바우하우스로 대변되는 당시 간결한 디자인의 오리지널 벽시계가 많았다.
바우하우스, 브라운, 디터 람스 등 디자인 키워드는 젊은 사람들에게 몇 년 전부터 인기였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4560 디자인하우스는 그런 인기의 살아있는 예다. 어느 개인 수집가가 디터 람스 디자인을 좋아했다. 자기 수집품을 모아 작은 전시장을 만들었다. 2년간 2만여 명이 다녀가 220평 규모로 확장했다. 나는 이곳의 인기가 하나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포스터를 알아보고 있어요. 포스터는 가장 가성비 좋게 공간의 인상을 바꾸는 소품 같아요.” 이사 예정이라는 1994년생 남성의 말을 듣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서양 주요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포스터를 판다. 포스터 자체가 멋진 시각 디자인이니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나는 멋진 포스터를 볼 때마다 “한국 사람들은 벽에 뭘 잘 걸지 않으니 저 풍조가 한국까지 오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 지금 서울에는 아트 포스터나 프린트 가게도 많다.
벽시계와 포스터의 공통점이 있다. 가격이 적당하다. 디자인 수준이 높다. 그리고 옮기기 쉽다. 이는 지금 젊은이들의 특징 및 주거 상황과도 잘 맞는다. 해외 경험은 많아졌다. 안목도 높아졌다. 반면 예산은 한정되고 인테리어 자유도는 낮다. 이 변수를 늘어놓고 생각하면 남는 실내장식 소품은 역시 벽시계와 포스터다. 이렇게 원고로 쓰고 말 게 아니라 벽시계와 포스터 가게를 차려야 할까. 가게 이름은 ‘벽을 넘어서’ 같은 걸로.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