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열전’ 우리말로 펴낸 신경란 번역가
반고가 쓴 中 전한 시대 역사서, 주요 인물의 성공과 실패 다뤄
“귀족 배제한 인재 발탁 배울만” 읽기 쉽게 다듬으며 13년간 작업

한서열전을 쓴 역사가 반고. 민음사 제공
중국 전한(前漢) 시대 재상을 지낸 공손홍(公孫弘·기원전 200∼기원전 121)은 ‘흙수저’들의 희망이다. 그는 가난한 평민 출신으로 돼지를 키우며 살았는데 나이 들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공손홍은 나이 육십에 한무제에 의해 요직에 전격 등용됐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탄 것이다.
지난달 30일 출간된 ‘한서열전’(민음사)을 번역한 신경란 번역가(58·여)는 9일 화상 인터뷰에서 “개천에서 용 나는 시스템을 확립한 전한 시대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한은 출신이나 배경이 아닌 능력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시스템을 동아시아 고대국가 중 가장 먼저 확립했다. 전한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인재 발굴의 기준을 되새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신 번역가는 “전한 황제들은 특권층인 귀족으로의 인사 쏠림을 막기 위해 다양한 경로로 인재를 발탁했다”며 “독자들이 한서열전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문화를 융성하게 하고 제도의 기틀을 세운 전한의 비결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서열전’을 번역한 신경란 번역가는 “전한은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가 배출되고 수준 높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문화 융성의 시대”라며 “동아시아 문화의 근간이 전한 때 확립됐다”고 말했다. 신경란 번역가 제공
이 책은 기획부터 출간까지 13년이나 걸렸다. 그는 2008년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뒤 6년간 초벌 번역을 했다. 이후 5차례에 걸쳐 원문과 번역본을 읽으며 오류를 고치고 문장을 다듬었다. 중국 난징(南京)에 머물고 있는 신 번역가는 국내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후 중국 난징대에서 고대 중국어 문법을 전공했다. 반고가 집필하기 시작한 한서열전을 여동생 반소가 완성한 것처럼 이번 번역도 한 집안의 ‘집단지성’으로 이뤄졌다. 신 번역가는 “난징대에서 중국 고대 문학과 중국 고대사 박사 과정을 각각 밟고 있는 딸과 아들이 곁에서 번역을 도왔다. 아이들 덕에 오랜 작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