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운영하는 남산 시가클럽에서 만난 피에르 코엔아크닌씨. 올해 4월을 넘기면서 한국생활 만 40년을 기록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태극기는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기입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한국사람들이 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40년 간 살아온 프랑스인 사업가 피에르 코엔아크닌 씨(62).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소월로 ‘피에르 바’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여권 사진을 보여주면서 “정확히 40년 전 오늘은 제가 처음 한국에 도착한 날”이라고 말했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한국의 ‘단군신화’부터 태극기, 한강, 골프와 운전룰까지 유머러스하면서도 예리한 시각으로 그동안 겪어온 한국의 문화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한국에 40년 동안 살아온 유럽인으로 그는 한국을 ‘뷰티 & 패러독스’의 나라라고 설명했다.
피에르 코엔아크닌씨의 여권 비자 사진.
1981년 4월27일 첫 입국 당시의 여권. 이십대의 청춘은 이제 육십을 훨씬 넘겼다. 피에르 코엔아크닌씨 제공
―태극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기’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한국의 태극기는 ‘완전한 자유(freedom)’의 상징이다. 자유란 산 속에서 홀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매 순간 순간, 매 초마다 ‘중도(中道)’를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당신을 필요하고, 당신도 나를 필요로 한다. 음(陰)과 양(陽),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태극기는 그런 의미에서 원더풀하다. 믿을 수 없게 아름답다. 태극기 안에 모든 원리가 다 들어 있다. 한국인들은 이 아름다운 태극기의 뜻을 어렴풋하게 알면서도, 더 깊이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스스로의 아름다운 문화를 잘 모른다.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긴다고 겉으로는 말하면서도, 사실상은 외국문화를 동경해왔다.”
유태계인 코엔아크닌 씨는 1981년 4월27일 서울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무역담당 직원으로 한국에 처음 도착했다. 당시 나이는 23세.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위해 한국에 온 것이었다. 이후 40년 간 한국에서 다양한 사업을 해왔다. 프랑스 패션기업들의 한국 진출을 도왔고, 와인, 시가, 화장품, 기계, IT산업 등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무역업에 종사했다. 그는 현재 남산 자락에서 쿠바산 시가와 프랑스 내츄럴 와인을 맛볼 수 있는 피에르 바도 운영 중이다. 그는 지난해 ‘더 서울 라이브’라는 책에 한국의 단군신화에 대한 글을 썼다. 그가 평소 연구해오던 ‘뷰티 & 패러독스’의 나라 한국에 대한 첫 장이다.
―단군신화에서 주목한 점은 무엇인가.
그는 한국 음식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발효’라고 말했다. 그는 발효는 우주를 운행하는 ‘신의 작용’(Act of God)이라고 말했다.
한국음식은 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해 발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홀리스틱(holistic·전체적인, 치유의) 푸드이자 영적인(Spiritual) 음식이다. 한국음식은 우주와 하늘의 에너지와 땅의 기운이 연결되는 매우 파워풀한 음식이다. 물론 발효음식은 전세계 어디에도 있다. 프랑스에도 발효음식인 치즈가 있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정도가 다르다. 다른 나라에 발효음식이 1~3정도 있다면, 한국은 5정도 레벨이다. 얼마나 많은 양, 어느 정도의 발효가 되느냐가 중요하다. 서양의 음식문화는 수직적인 반면, 한국의 음식문화는 수평적이다.”
―한국의 음식문화가 수평적이라는 뜻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에피타이저와 메인요리, 디저트가 개인별로 1인 분씩 순서대로 나온다. 반면 한국에서는 모든 메인요리와 반찬을 한꺼번에 놓고 함께 나눠먹는다. 이스라엘도 반찬을 한꺼번에 놓고 나눠먹는 문화는 한국과 똑같다. ‘수평적 음식문화’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공통점이다. ‘수평적인 음식문화’는 식사시간에 배만 채울 뿐 아니라 감정을 함께 나누고, 정(情)을 경험하게 된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보다는 ‘나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I eat, therefore I am)’가 더 맞는 말이다. 모든 것은 음식에 달려 있다. 음식이 존재를 규정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당신의 몸과 생각, 태도, 개인과 사회, 국가의 철학이 달라진다.”
―한국에서 40년간 살면서 가장 재밌거나 인상깊게 느낀 점은.
남산 중턱에 자리잡은 그의 시가클럽 테라스에서 지인과 통화하는 피에르씨.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가장 재밌는 것은 ‘로컬룰’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은 전통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외국문화도 잘 받아들인다. 그런데 외국문화를 받아들일 때는 한국 스타일로 변형시키는 걸 좋아한다. 골프를 칠 때도 ‘코리안 룰’ ‘로컬룰’을 잘 지켜야 한다. 골프장에서 숲속이나 헤저드, 러프에 공이 들어갔을 때 리커버리 샷을 치는 것은 골프에서 매우 중요하고 가장 재밌는 순간이다. 그런데 한국의 골프장에서는 숲 속에 공이 들어가면, 대부분 그냥 페어웨이에 공을 꺼내놓고 치라고 한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빨리 쳐야 하니까’ 그렇다. 운전에도 로컬룰이 있다. 국제운전룰에 따르면 비상깜빡이는 ‘엔진 이상’과 같은 매우 긴급한 상황일 때 눌러야 하는 버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비상깜빡이를 켜서 고맙다는 표시를 한다.”
―40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와 지금 한국은 어떻게 달라졌나.
시가바 안의 소품들. 모두 쿠바에서 들여왔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한강과 센강의 다른 점은?
“국토 전체로 보자면 강물은 우리 몸에서 혈관, 핏줄에 해당한다. 한국은 커다란 것을 숭배하는 나라다. 도시에 흐르는 강도 큰 것을 선호한다. 한강의 다리는 ‘대교’라고 불린다. 반면 프랑스나 유럽의 도시들은 도심에 흐르는 강폭이 비교적 좁아 걸어서 건널 수 있다. 물론 하류에 가면 센강도 강폭이 넓어진다. 그러나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의 센강은 5분이면 걸어서 건너는 폭이 좁은 강이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는 폭이 좁은 수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강과 도시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한국을 ‘뷰티 & 패러독스’의 나라로 설명하는 이유는.
―학생들과 자주 이야기하는 내 인생의 모토는?
“나이키의 ‘Just Do it’이다. 나의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냥 해’. 심플하다. 나이키의 로고는 한번 밑으로 내려갔다가 위로 올라간다. 한번 넘어지고, 고통을 겪더라도 그걸 극복하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탈무드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창피하더라도 넘어진 걸 깨끗이 인정하다. 그리고 털고 일어나, 그냥 그걸 하는(Just Do it) 것이다. 젊은이나 어른이나, 프로페셔널에게도 필요한 모토다. 두 번째로 학생들과 나누는 가장 중요한 태도는 조니 워커의 ‘Keep Walking’이다. 돈을 좀 벌었다고, 사업이 망했다고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계속해서, 내가 하던 길을 걸어가야 한다. MBA에서 강의할 때 비즈니스 원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은 사람의 인성과 태도, 휴머니티에 달려 있다. 기술이나 지식은 학교나 학원에서 트레이닝 받으면 된다. 단 한번의 화를 참지 못해 인생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결혼하고 싶었던 여자 친구 앞에서 사소한 말다툼으로 단 한번 화를 냈을 뿐인데, 관계가 영원히 끝나버리기도 한다. 사업적으로 중요한 파트너와 고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는 남산 소월로에 위스키와 커피, 와인과 함께 시가를 즐길 수 있는 ‘피에르 시가 바(Cigar Bar)’를 운영하고 있다. 1995년부터 쿠바산 시가를 직수입해 멤버십으로 운영하는 바다. 그는 끝을 커터로 자른 후 토치로 불을 붙인 후 20분~1시간가량 즐기는 시가는 충분한 여유를 갖고 즐기는 친교의 문화라고 설명했다.
―시가의 좋은 점?
2017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세계유대인올림픽에 유일한 ‘한국 유대인 대표선수’로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입장한 피에르씨. 그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이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시가와 와인의 비슷한 점?
남산소월길 중턱에 위치한 시가클럽.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그가 사랑하는 또하나의 소품은 스쿠터다. 서울시내에서 이동할 때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 이탈리아 브랜드 ‘피아지오 350’이다. 지방을 갈 때는 좀더 큰 ‘타이거 1200’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
쿠바산 시가와 프랑스 내츄럴와인에 걸맞게 실내분위기가 이국적이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