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분만큼은 할 말 없는 상황” 그것만 빼면 꿀릴 게 없다는 자화자찬 반성도, 국정전환도 없는 문 대통령 덕분에 정권교체는 한결 쉬워졌다
김순덕 대기자
대선 주자 시절 문 대통령 별명이 고구마였다. “이재명은 빠르고 명쾌한데 문재인은 느리고 모호하고 답답해서 고구마란다”는 교통방송 김어준의 지적에 그는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 저는 든든한 사람”이라고 큰소리 쳤다.
만일 이번에 문 대통령이 “보선을 통해 엄중히 심판한 민의를 받들어 국정 전반을 재검토하겠다”고 겸허히 밝혔다면 차라리 든든했을 거다. 탁현민식의 쇼라는 게 나중에 드러나도 잠시는 나라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부동산 실정(失政) 하나 때문에 ‘서울 25 대 빵(0)’의 선거 결과가 나올 리 없다. 작년 총선 압승 뒤 일당 독재로 치달은 집권세력의 오만과 무능에 대한 심판이라고 주요 일간지들은 도배를 했다. 대통령이 휴대전화로 문파 댓글은 열심히 보는지 몰라도 주류 신문은 쳐다보지도 않는 모양이다.
정세균 전 총리는 모를 리 없다. 그는 지난달 사퇴하기 이틀 전 대선 준비 모임에서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사태’가 선거 패배에 크게 작용했다는 강의까지 들었다. 민심은 민생 안정을 원하는데 대통령과 친문세력은 검찰총장 윤석열 찍어내기와 대북관계에나 골몰했다는 게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의 분석이다. 당심(黨心)과 민심의 괴리가 심각하다는 더불어민주당 선거 패인 보고서와 거의 일치한다.
그가 서둘러 총리직을 던진 것도 이들 세력과 거리 두기를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선거 패인 같은 중요한 문제를 당정과도 소통하지 않는 대통령이 대선 주자들에게 ‘국민과 소통하며 시대정신 찾기’를 강조했다.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문 정권의 시대정신 내로남불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러니 “부동산 부분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고 나머지는 다 잘한 척 자화자찬을 한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4년을 앞두고 “부동산정책 말고는 꿀릴 게 없다”고 자부했던 과거가 절로 떠오른다.
“따지고 보면 경제도, 북핵 위기관리도 잘못한 게 없다”고 살아생전 고인이 역설했던 그날, 열린우리당 의원 워크숍에선 분당(分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문 대통령이 인사검증 실패는 없다며 장관 후보자 3인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국회에 재요청한 11일, 여당 초선 의원들이 최소 1인 낙마를 요구한 것과 비슷하게 가는 형국이다.
자신을 비판한 국민까지 고소하면서 ‘무오류’를 고수하는 대통령이면 앞으로 지지율 떨어질 일만 남았다. 작년 2월부터 몇 차례나 “코로나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더니 10일도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대통령이다. 코로나 끝은 모르겠고 내 눈엔 문 정권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다만 “남은 임기 1년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문 대통령이 강조했듯, 실제로 나라의 근본이 달라질까 걱정이다. 문 대통령과 비교하면 새삼 노 전 대통령이 존경스럽지만 난형난제다. 2007년 대선 전처럼 “선관위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결정과 선거법 준수 요청은 개인 노무현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헌법소원을 냈다가 기각당하는 일도 반복돼선 안 될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헌법재판소와 선관위 등 헌법기구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문 대통령과 같은 성향으로 그득한 지금은 과연 살아있는지 불안하다. 그럼에도 4년 전 ‘트럼프 시대 미국에서 살아남는 법’을 쓴 예일대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의 행동강령 중 딱 세 개만 공직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첫째, 미리 알아서 복종하지 말 것(정권의 끝이 보이고 있다). 둘째, 법원, 언론, 의회 같은 제도를 보호할 것(인사청문회는 삼권분립에 따라 대통령의 인사권을 의회가 견제하는 제도다). 셋째, 애국자가 될 것(이 나라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