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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의무화가 불러온 밥상 논쟁[정기범의 본 아페티]

입력 | 2021-05-13 03:00:00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프랑스 리옹시는 개학일을 앞둔 지난달 26일 새로운 발표를 했다. 학교 급식 주 2회 채식 의무화를 시행하려던 그레고리 두세 시장의 결정이 무기한 연기됐다는 소식이었다. 뉴스를 함께 시청하던 초등학생인 둘째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채소를 거의 섭취하지 않는 식습관으로 평소 잔소리를 듣던 처지에선 “채식 급식을 강제하겠다”는 리옹 시장의 발표가 은근히 스트레스였던 모양이다.

‘프랑스 사람은 살찌지 않는다’라는 책이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그 책의 내용처럼 거리에서 뚱뚱한 사람을 보기 힘든 프랑스에서는 2007년부터 “하루에 5개의 과일과 채소를 매일 섭취하자”는 범국민 캠페인이 시작됐다. 지금도 식품 광고마다 이 문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2019년 농업 및 식품 산업 균형 개선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국공립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까지 일주일에 최소 1회 채식 메뉴를 내놓게 했고, 2021년까지 급식 재료 절반을 지역 친환경 농산물로 사용케 하는 법안도 통과됐으니, 정부가 국민들에게 채소와 과일 섭취를 강제하는 게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올해 2월 프랑스 남동부 리옹 시장에 당선된 녹색당 두세 시장의 발표로 야기된 논란은 리옹이라는 도시의 특수성까지 더해져 파급력이 컸다. 예부터 리옹과 그 주변은 육가공 산업과 유제품 생산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많아 ‘식도락의 수도’로 불려왔다. 2018년 작고한 프랑스 요리계의 전설이자 ‘레스토랑계의 교황’으로 불리는 폴 보퀴즈가 지휘했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부터 브레스(Bresse) 닭을 세계적인 요리로 끌어올린 미슐랭 3스타 조르주 블랑에 이르기까지…. 이곳은 지역의 좋은 식재료 혜택을 고스란히 받아 성장한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미식가의 천국이다. 그런 동네에서 당선된 새로운 시장이 내 아이의 밥상까지 참견한다니 난리법석이 날 법도 하다.

두세 시장은 왜 그리도 채식 급식 의무화에 적극적이었을까? 우선 녹색당 소속 자치단체장인 그는 가축 사육으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는 것을 마냥 지켜볼 수는 없었을 테다. 팬데믹 상황에서 육식 위주 급식을 개선하겠다는 생각 역시 한몫 거들었다. 리옹 시장의 채식 의무화 발표 직후 그린피스와 환경보호론자들은 학교 급식이 과도하게 육류 섭취를 늘려 어린이들의 영양 과잉과 비만을 늘려왔다며 리옹 시장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반대로 생계의 위협을 느낀 축산업자들은 반대 시위를 벌였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 영양 불균형을 이유로 리옹 시장의 결정에 우려를 표했다.

정치권이 가세한 TV토론 현장에서는 전쟁 같은 설전이 오갈 정도였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먹고사는 것보다 절실한 것이 없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잘 사는 것의 시작이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라는 보편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유기농 식품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식탁 위 혁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