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가정 모집에 두달새 632명 신청
“정인이 소식에 온몸이 아렸습니다. 위탁모(베이비시터)로 지낼 때 제게 와줬던 송현이(가명)가 정인이처럼 양모 학대로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 충격으로) 10년간 위탁모 활동을 안 했는데 정인이는 저를 다시 움직이게 했습니다.”
울산에 사는 김정의 씨(59)는 3월 8일 울산가정위탁지원센터에 학대 피해를 입은 위기아동을 보호하는 위탁가정이 되겠다는 신청서를 냈다. 2003년부터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위탁모로 아동 120여 명을 돌봤지만 김 씨는 2011년 활동을 관뒀다. 당시 위탁모로 보호했던 송현이가 입양 뒤 생후 28개월 때 양모 학대로 숨졌기 때문이었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몸부림쳤던 그는 더 이상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10년 만에 다시 용기를 냈다. 정인이 때문이었다. 2개월 동안 울산과 서울을 오가며 20시간 교육 과정을 마쳤다. 안방에 아이가 머물 침대도 마련했다. 김 씨는 요즘 매일 기도한다. 아이들의 상처를 감당할 힘을 달라고.
14일 서울남부지법에선 정인이 양모와 양부의 선고 공판이 열린다. 지난해 10월 13일 정인이가 세상을 떠난 지 7개월 만이다. 그동안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몰라도, 김 씨처럼 정인이를 가슴에 품고 학대 아동들에게 손을 내미는 우리의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올해 3월 8일부터 모집을 시작한 ‘위기아동 가정보호’에 10일 기준 632가구가 신청서를 냈다. 지난해 1년 동안 위탁가정 지원이 467가구였던 걸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로 폭발적”(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이란 반응이 허투루 나오는 게 아니다.
해당 프로그램은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온 즉시 가해자로부터 분리하는 일명 ‘정인이법’(개정 아동학대범죄처벌 특례법)이 3월부터 시행되며 시작됐다. 학대당한 0∼2세 아동을 가정에서 일대일로 돌보는 방식이라 자격 요건이 무척 까다롭다. 교원 자격증이 있거나 3년 이상 위탁가정으로 아이를 돌본 경력이 있어야 한다. 기존 위탁가정은 5시간만 교육을 받지만, 위기아동 위탁가정은 20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전북 전주에 사는 최미진 씨(38)도 1월 전북가정위탁지원센터에 신청 서류를 냈다. 만류하던 남편은 “우리 아이들만 잘 키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함께 살아갈 아이들도 보호받고 자라야 우리 아이들도 사랑하며 어울릴 수 있다”고 설득했다. 결국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 씨는 현재 위탁가정 교육 이수를 마치고 소득 및 가정 방문 조사를 앞두고 있다.
덧없이 떠난 정인이를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네 아이의 엄마인 김지선 씨(37)는 사비를 들여 전단 2만 부 이상을 찍었다. 앞면엔 정인이 양부모를 엄벌해 달라는 내용을, 뒷면에는 아동학대 피해 신고 요령을 상세히 담았다. 전국에서 뜻을 같이하는 엄마들에게도 보내 “한 사람만 움직여선 효과가 없다”는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김 씨는 “길거리에 다 버려질지언정 누군가 딱 1장이라도 읽은 뒤 아동학대 신고를 한다면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21개월 된 아이를 둔 엄마 이혜리 씨(30)는 오늘도 어김없이 펜을 들고 있다. 그는 “정인이 양부모를 엄벌하자”는 진정서를 매일 2통씩 서울남부지법에 보냈다. 지금까지 130통이 넘는다. 이 씨는 “출퇴근길에 진정서 문구를 정리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남부지법에는 지금까지 매일 엄마들이 보낸 진정서가 수백 통씩 도착하고 있다.
조응형 yesbro@donga.com·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