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어떨 때는 혼자 산책하기보다 친구들과 동네를 답사하는 것도 좋다.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라도 괜찮다. 관심사만 공유하면 말이다. 같은 마음을 가진 외국인 남자 17명이 121년 전 1900년 6월 16일에 서울 정동의 당시 외국인 회관에 모여 한국을 바로 알기 위해 소위 ‘왕립아세아학회 대한제국지사(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라는 것을 설립했다. 가장 오래되고 전통 있는 한국학 학회로 여전히 존재한다. 코로나19 전에는 한 달에 두 차례 모여서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 영어로 강좌를 듣고 정기 문화답사를 펼치고 있었다. 나는 2004년부터 계속 이 모임의 회원이다. 강좌를 듣고, 몇 번 연설도 하고, 주말 문화답사에도 여러 차례 참석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강의는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대규모 문화답사는 물론 불가능하다. 그런데 최근에 한 달에 한 번 ‘점심시간 답사 걷기 클럽’은 다시 조심스레 활동을 재개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이 차례대로 흥미롭고 볼만한 동네, 건물과 박물관 등을 선정해 다른 멤버들에게 알리면 어느 화요일 정오에 모여 딱 한 시간 동안 안내하고 구경하며 거닌다. 지난 화요일은 내 차례가 돌아와 덕수궁 밖을 둘러싼 이른바 ‘고종의 길’을 선택했다.
그날 정오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에서 출발해 고종의 길을 따라 걸었다. 나는 가다가 여기저기 잠깐 서서 보이는 건물 또는 역사적인 관심거리를 설명했다. 오후 1시 전 다시 대한문에서 헤어졌다. 인도하는 나도 너무나 즐거웠고 같이 동반하는 사람들도 꽤 재미있어 했던 것 같다.
매번 같은 사람들이 오는 것은 아니다. 답사할 모험가가 적을 때는 적고 많을 때는 많다. 참가자의 4분의 3 정도가 외국인으로 답사는 영어로 진행된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도 있고 몇십 년 살아온 사람도 있으며 서울 토박이 노인도 계신다. 돈도 낼 필요가 없으니 유일한 자격 조건은 한국, 그리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뿐이다. 그 짧은 점심시간 동안 거니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 새로운 것을 보거나 알게 된다. 공짜로 함께 서울을 탐구하는 매우 효율적이면서 멋진 답사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곳이 이렇게 멋있는 줄 몰랐다.” “서울에 산 지 오래됐는데 진작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그동안 많이 바뀌었네. 더 자주 와야겠다.” 답사 후 여러 반응이 나왔다. 서울만 해도 잘 모르는 동네가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다.
가끔 동료 몇 명과 모여 직장과 집 주위를 답사하는 것이 어떨까? 쳇바퀴 돌 듯 살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일상을 일탈하는 것이다. 어느 직장이나 나처럼 유독 지역과 역사 탐방을 즐기는 사람이 있을 테다. 그런 사람이 주도해 주변 답사를 해보는 것이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