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마스크는 주술적 의미를 담거나 인간의 초월적 욕망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잉판의 미남이라 불린 2000년 전 실크로드의 미라가 쓴 마스크(왼쪽 사진)와 기원전 18세기 아시리아에서 만들었던 황금 마스크. 강인욱 교수 제공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역사적으로 마스크는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는 도구로 사용됐다. 실제로 많은 마스크는 영화 쾌걸 조로나 배트맨의 마스크처럼 눈을 가리고 입을 드러내는 식이다. 인상을 좌우하는 눈매를 감추는 게 더 중요했던 탓이다. 우리 전통 각시탈이나 하회탈도 같은 의미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미국에 수출된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콘셉트는 감추어진 또 다른 인물에 대한 기대감일 것이다.
가면은 샤먼의 필수품
고대로 올라가면 마스크는 샤먼들의 전유물이 된다. 샤먼이란 모름지기 다양한 도구로 신과 맞닿아야 하는 직업이다. 작두에 올라가서 춤을 추든, 방울을 흔들든 그 본질은 똑같으니, 원래 자신의 모습을 벗고 신의 영과 통해야 한다. 이런 샤먼의 모습은 구석기시대부터 등장했다. 1만5000년 전 프랑스 트루아 프레르 동굴 벽에 그려진 사슴뿔을 한 샤먼(또는 마법사)의 그림이 바로 그것이다. 구석기시대 샤먼이 쓴 사슴뿔은 지금까지도 시베리아 샤먼의 단골 메뉴가 되었고, 멀리 보면 신라 금관에 새겨진 사슴뿔 모양과도 일맥상통한다. 아마 사슴뿔처럼 땅과 하늘을 잇는 샤먼의 능력을 상징했던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의 능력을 능가하는 초월자가 되고 또 다른 자아를 만들려는 인간의 욕망은 마스크 탄생으로 이어졌다.
고고학자들도 마스크를 꽤 많이 발굴한다. 많은 지역에 사람을 매장할 때 그냥 묻지 않고 얼굴을 복면이나 마스크를 씌우는 전통이 있다. 이 마스크에는 망자의 건강했던 모습이 그려져 있으니, 저승에서 다시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특히 실크로드에서 황금마스크가 많이 발견된다.
죽은 자를 위한 장송곡
1910년 만주 페스트에 대응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화교 의사 우롄더가 개발한 마스크.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렇게 인간 역사와 함께했던 마스크는 120여 년 전부터는 인간을 살리는 마스크로 바뀌었다. 인간의 비말에 섞인 바이러스가 감염병의 주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근대 세균학이 발달하기 이전부터 인간들은 세균 자체는 몰랐지만 다른 사람의 타액이나 호흡 과정에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물론,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볼 수 있는 현미경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쁜 기운’ 또는 ‘악마의 숨결’과 접촉하면 악마의 기운이 몸으로 들어온다고 믿었다. 17세기 프랑스 의사가 개발한 펭귄처럼 생긴 중세 의료용 마스크가 그 시작이었다.
만주에서 시작된 방역 마스크
본격적으로 의료용 마스크가 도입된 곳은 만주 일대였다. 그 시작은 1910∼1911년 창궐한 만주 페스트 때문이었다. 당시 만주 일대에는 설치류인 ‘타르바간’이라는 동물을 잡아 모피를 벗겨서 파는 산업이 활발했다. 설치류와 접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킨 페스트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런 페스트는 초원에 고립된 채 발생해 조용히 사라진다. 하지만 1910년 당시 러시아가 만주 일대를 지배하기 위해 건설한 동정철도를 따라서 하얼빈으로 퍼졌고, 곧 만주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만주에서만 약 1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당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나라에도 확산되었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의 의사 우롄더(伍連德)가 등장하여 그 피해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는 마스크의 효능을 확신하고 직접 개발한 마스크를 방역단과 사람들에게 보급하고 체계적으로 막아냈다. 오히려 그깟 천 쪼가리가 어떻게 천형을 막을 수 있냐며 따르지 않은 서양 의사들이 페스트로 쓰러졌다고 한다. 마스크의 효능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발생한 스페인 독감에서도 증명되었다. 아마 수천 년 뒤 고고학자들이 문명사를 쓴다면 만주와 한반도 일대를 대표하는 발명품으로 의료용 마스크를 함께 올릴 것이다.
마스크로 빨리 코로나를 극복하고 다시 즐거운 놀이와 의식에 마스크를 사용하는 아름다운 시대가 오길 기대할 뿐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마스크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과밀화된 도시와 환경오염으로 비슷한 팬데믹 공포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으로는 다른 사람의 민낯을 보는 것이 어색한 시대가 될지 모르겠다. 지난 1만5000년간 지속된 ‘샤먼의 마스크 시대’가 사라지고 대신에 사람을 살리는 ‘의료용 마스크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