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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가의 선율 재해석으로 공감 얻은 오페라 ‘브람스…’

입력 | 2021-05-14 14:48:00

브람스와 슈만의 곡을 실내관현악 용으로 편곡 반주
장기공연과 순회 레퍼토리로 정착시킬 가능성 보여
피아노 손정범-발레 김용걸 등 인기 아티스트 출연






13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한 국립오페라단의 서정오페라 ‘브람스…’는 한국 음악극 역사에서 독특한 영역을 점유할 작품이다. 브람스와 슈만의 곡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편성을 달리해 편곡한 19개 ‘넘버’로 구성됐으며, 창작곡인 이중창 두 곡도 브람스의 작품에서 주제 선율을 가져왔다.



작곡과 편곡은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레드슈즈’로 높은 평가를 받은 작곡가 전예은이 맡았고 한승원이 연출과 대본을 맡았다. 여자경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지휘대에 섰다. 피아니스트 손정범이 피아노 앞에서 젊은 브람스를 연기하고, 발레리노 김용걸이 춤으로 브람스를 표현하는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빛을 더했다.

클라라 슈만을 향한 브람스의 사랑을 틀 삼고 슈만과 브람스의 가곡을 비롯한 작품들을 날실과 씨실 삼아 짜낸 극의 구성은 두 대작곡가의 매력적인 음악에 힘입어 잔잔한 설득력으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나 가곡 반주부를 실내 관현악용으로 편곡한 전예은은 브람스 관현악 특유의 스산함과 끊임없이 흐르는 운동감을 잘 재현해냈다.



반주는 20여명으로 구성된 클림 챔버오케스트라가 맡았다. 현악부의 합주가 종종 정밀하지 못하게 들렸지만 이는 파트당 2~4인으로 구성된 소편성 악단이 이날처럼 잔향이 적은 공간에서 연주할 때 더 확대돼 느껴지기 쉬운 부분이다. 악단은 무대 가운데 자리 잡고, 악단을 둘러싼 간소한 무대장치를 배경으로 출연자들이 연기와 노래를 펼쳤다. 악단의 연주 모습을 보면서 극을 감상할 수 있어 흥미로웠고, 의상과 조명의 효과적인 사용 덕에 무대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구성에 있어서 선뜻 찬동하기 힘든 부분은 네 번째 곡인 브람스 칸타타 ‘리날도’의 합창이었다. 브람스와 슈만 부부의 만남 장면으로 ‘플래시백’하기 전 브람스 만년의 성공을 상징하는 장치일 수도 있고, 우울한 톤으로 짜인 극에 한결 밝은 빛을 부여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합창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시도도 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극의 나머지 줄기와는 겉도는 부분이었다. 한편 유능한 작곡가이기도 했던 클라라 슈만의 작품이 극에 삽입되었어도 좋았을 듯했다. 잔잔한 슬픔의 감성이 드러나는 피아노3중주 작품17의 느린 악장 정도가 들어갔으면 좋은 효과를 냈을 것이다.



역사인물을 극화할 때 모든 내용이 사실에 입각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슈만의 사망 전 브람스와 클라라가 함께 연주하는 것으로 묘사된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5번은 실제 슈만이 죽은 뒤 작곡됐다. 슈만의 사망 장면도 문헌에 나오는 것과 다르게 묘사되었다. 극을 위한 예술적 상상력으로 이해할만한 부분이다.

공연 첫날인 13일 브람스 역을 맡은 베이스 박준혁, 클라라 역 소프라노 박지현, 슈만 역 테너 정의근은 각각의 곡이 담은 분위기를 차분하고도 정밀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세 주역 모두 자신의 감정선을 부각시키며 반주부와 함께 클라이맥스까지 힘 있게 이끌고 가는 힘은 부족했다. 한편으로 클라라 역의 소프라노는 노래 뿐 아니라 무용, 피아노 연주까지 ‘본업’이 아닌 두 역할을 더 소화해야 한다. 13일 공연의 클라라 박지현은 이 모두를 완숙하게 이뤄냈다.

이번 공연은 국립오페라단이 이 작품을 장기공연 또는 순회 레퍼토리로 채택할 수 있을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브람스가 나고 활동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무대에의 도전도 고려해볼만 하다. 몇몇 부분에서는 한국인의 손으로 독일 선율에 독일어 가사를 붙였는데, 독일어 사용자의 감수를 거쳤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독일 무대에 올렸을 경우의 평가가 궁금해졌다.

16일까지. 14일 저녁 7시 반, 15~16일 오후 3시 공연. 14, 16일에는 브람스 역 양준모, 클라라 역 정혜욱, 슈만 역 신상근이 출연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