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사건 ‘거꾸로’ 정권 치부 돼 文 연관성 묻는 방향으로 불똥 튈 수도
5월 11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5월 10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이 지검장 기소를 권고한 지 이틀 만이다. 이 지검장은 2019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 금지(출금)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원지검의 이 지검장 공소장에는 조국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도 수사 무마에 관여한 정황이 담겼다.
이 지검장은 기소 직후 낸 입장문에서 “(김 전 차관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하는 등 불법행위를 한 사실이 결코 없다”며 “향후 재판 절차에 성실히 임해 진실을 밝히고 대검 반부패강력부(반부패부)의 명예를 반드시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보수정권의 적폐라던 김학의 사건이 ‘거꾸로’ 문재인 정권의 치부로 바뀌어가는 형국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文 대통령 ‘의혹 규명’ 요청
김학의 전 차관은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강원 원주시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혐의로 두 차례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그런데도 적폐 청산을 내세운 문재인 정권의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4월 23일 이 사건 조사를 권고했다. 그리고 2019년 3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김 전 차관 사건 등을 보고받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이 보기에 대단히 강한 의혹이 있는데 오랫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심지어 은폐된 사건들이 있다. 공통적 특징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일이고,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고의적으로 부실 수사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오래된 사건인 만큼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히 사법처리해주기 바란다. 힘 있고 백 있는 사람들에게는 온갖 불법과 악행에도 진실을 숨겨 면죄부를 주고, 힘없는 국민은 억울한 피해자가 돼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오히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두 장관이 함께 책임지고 사건의 실체와 여러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주기 바란다.”
나흘 뒤인 2019년 3월 22일 밤 인천국제공항에서 태국행 비행기를 타려던 김 전 차관이 법무부에 의해 출국을 금지당했다. 그리고 5월 16일 검찰은 김 전 차관을 성접대가 아닌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했는데,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에선 유죄가 나와 김 전 차관은 법정 구속돼 현재 3심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춤을 춰온’ 김 전 차관 사건이 이 지검장 기소를 초래한 것은 정말로 엉뚱한 일 때문이다.
김 전 차관 출국을 막은 법무부가 김 전 차관의 개인정보를 177회 무단 조회한 직원 3명을 자체 감사로 적발한 것이 시작이었다. 법무부는 김 전 차관이 이들로부터 “출국 금지를 당할 것”이라고 귀띔 받아 출국을 시도했다 보고, 이에 대한 조사를 반부패부에 의뢰했다. 반부패부는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에 수사를 맡겼는데 안양지청은 바로 김 전 차관 출국금지요청서가 위조된 것을 간파했다. 요청서에 쓰인 사건번호 형식이 실제와 다르고 발행기관인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관인(官印)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양지청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이 김 전 차관 출국을 막은 후 엉터리 요청서로 출금을 한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도 확인했다. 이를 추궁하자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은 “잘못된 것은 법무부 요청서인데,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 하느냐. 우리는 김 전 차관에 대해 출국 금지가 내렸는지 확인했을 뿐”이라고 반발했다. 안양지청은 허위 출국금지요청서를 만든 주체를 찾는 것으로 수사 방향을 돌리기로 하고, 그러한 내용을 담은 수사계획서를 반부패부로 보냈다. 그 무렵 이성윤 당시 반부패부장은 서울동부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식 사건변호 기입과 관인 날인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거절당한 일이 사후 보고로 둔갑
결국 안양지청은 반부패부로부터 수사를 종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안양지청은 ‘야간 급박한 상황에서 관련 서류(출국금지요청서)의 작성 절차가 진행됐고, 서울동부지검장에 대한 사후 보고가 된 사실이 확인돼 더 이상 진행 계획 없음’이라는 요지의 수사(결과) 보고서를 만들어 7월 4일 반부패부로 보내야 했다. 이성윤 부장이 서울동부지검장에게 요청했다 거절당한 것을 ‘동부지검에 사후 보고한 것’으로 적어 반부패부에 보고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수심위에 출석한 이정섭 수원지검 부장검사는 “(이것은) 수사지휘의 탈을 쓴 수사무마”라고 지적했다.
김 전 차관이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법정 구속된 지난해 10월, 문재인 정권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징계하려다 실패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올해 1월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출범시켰다. 그러한 때 김 전 차관 불법 출금을 수사했던 안양지청 관계자가 국민권익위원회에 대검의 수사 방해를 신고해 반전을 만들었다.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수사를 맡게 된 수원지검은 허위 출국금지요청서 발행자인 이규원 검사, 서울동부지검장과 통화한 이성윤 지검장, 허위 출금금지요청서대로 집행한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이광철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을 조사했는데, 이 무렵 윤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이성윤 지검장은 검찰총장 후보로 천거됐으나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등외로 탈락시켰다. 문 대통령도,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고립무원이 된 그는 2018년 1월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혁 일환으로 설치한 수심위를 두들겼으나 수심위는 8 대 4로 기소를 결정했다. 이 지검장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울산시장 선거 개입 수사와 관련해서도 의혹을 받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김학의 수사’를 지시(문 대통령 측은 “지휘가 아닌 당부였다”고 주장한다)한 것으로도 보이는 문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묻는 방향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월성원전 1호기 수익 조작과 관련해서도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이러한 의심의 누적이 레임덕을 재촉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과 검찰의 기싸움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진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89호에 실렸습니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