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항공 기내식 카페 ‘여행의 행복을 맛보다(Jejuair on the table)’. 홍중식 기자
‘핫 플레이스 냄새’를 맡은 여러 언론사 기자들의 취재와 기내식 ‘먹방’이 벌어진 가운데 옆자리에 앉은 직장인 여성 손님 2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다른 기내식 메뉴를 주문한 이들은 “지나가다 매장이 특이해 보여 호기심에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앉은 건 창가 쪽 좌석이었는데, 창문을 비행기 내부처럼 래핑한 덕에 마치 항공기 창가 좌석에서 식사하는 것 같았다.

제주항공은 4월 29일 서울 마포구 AK&홍대 1층에 제주항공 승무원이 직접 운영하는 기내식 카페 ‘여행맛’을 열었다. 홍중식 기자
홍대 앞에서 느낀 기내 감성

일하는 직원 전원이 제주항공 승무원이다. 홍중식 기자
‘여행맛’ 오픈 기사가 쏟아진 다음 날 제주항공 홍보팀에 취재를 요청했더니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먼저 돌아왔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사가 줄도산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승무원들을 일할 수 있게 하고, 제주항공을 아끼는 팬들에게 서비스하는 차원에서 시작한 기내식 카페인데 ‘악플’이 많다고 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승무원의 본업은 안전요원인데 기내식 카페에서 일한다고 웨이터/웨이트리스처럼 여길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예쁘고 멋진 승무원을 보고자 ‘여행맛’을 찾는 이도 없진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승무원을 만나고 싶다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승무새’(승무원+앵무새)라는 말도 생겨났겠는가. 하지만 주위에 ‘여행맛’ 이야기를 하자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 가는 게 쉽지 않고 기내식도 제공되지 않는데, 새롭고 반갑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뜻밖의 ‘단골손님’도 생겼다. ‘예비 승무원’인 항공운항과, 항공서비스과 학생들이다. 학교와 학원에서 전문적으로 수업을 받는 것 외에도 오랜 경력의 소유자인 ‘대선배님’들의 접객 태도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산교육의 장이라 오픈 초기부터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동기 부여 받으려고 왔습니다. 꼭 나중에 (현장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롤모델인 제주항공 승무원분들 덕에 동기 부여 엄청 받고 돌아갑니다’ ‘나중에 꼭 제주항공 선후배로 만나기를’ 등등 냅킨에 꾹꾹 눌러 쓴 손편지 외에도 여러 차례 찾아와 제주항공 및 승무원 팬아트를 선물한 ‘찐팬’들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가방과 우산은 테이블로도 쓰이는 카트에 넣었다. 조금 기다리니 제주항공을 상징하는 컬러 박스에 기내식이 담겨 나왔다. 음료 홀더는 항공권 모양이었다. 승무원이 종이컵에 물을 따라줬다. 기내 복도 자리에 앉은 느낌이었다. 이게 얼마만의 (항공기에서 먹는 건 아니지만) 기내식인지, 손끝이 뜨끈한 은박 접시가 반가웠다.
기내식 메뉴를 맛볼 수 있어 여행 온 느낌을 준다. 홍중식 기자
무착륙 비행도 최초
코로나19 사태로 국제선 운항이 중단되면서 화물운송에 주력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FSC: 풀서비스항공사)는 올해 1분기 ‘선방’했지만, 여객 수요가 전부인 저비용항공사들은 국제선 운항 중단이 1년째 이어지면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제주항공 같은 LCC는 주력 사업이 국제선 여객이다. 수익성을 개선하고자 화물 운송을 확대하고 싶어도 가진 게 중소형기라서 FSC처럼 화물 운송으로 매출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에 제주항공의 팝업 스토어를 취재하면서 폐업 위기에 몰린 이스타항공에 몸담았던 친구가 떠올랐다. 코로나19 사태로 무급 휴직 중인 아시아나항공에 있는 친구도 생각났다. 무급 휴직은 면했지만 격월로 출근하는 대한항공 직원 친구까지…. 모든 직장인이 출근길에 “퇴근하고 싶다”를 외친다지만 스스로 일하지 않는 것과 외부 상황 때문에 일하지 못하는 건 비교할 수조차 없다. 제주항공의 노력이 짠하게 느껴진 건 그 때문이 아닐까. 문득 친구를 백수로 만든 이스타항공 창업주는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해졌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89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