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의 진화
이건혁 산업1부 기자
최근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서비스가 차세대 강자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지역에 기반을 두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하이퍼로컬’이 새로운 키워드로 주목 받았다.
○ PC통신, 싸이월드…사람들의 욕구 채워준 서비스들
전화선으로 데이터 전송망에 접속할 때 나는 요란스러운 연결음과 함께 시작된 PC통신은 1990년대를 상징하는 열쇠 말 중 하나다. 1985년 데이콤의 천리안이 시작됐고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이 뒤따라 생겼다. 속도 경쟁이 붙었고, 전화선 대신 전용 접속망이 생기면서 가입자가 크게 늘었다.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00년 말 주요 PC통신 가입자 수를 단순 합산하면 1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PC통신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동호회’를 탄생시켰다.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PC를 통해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정보와 의견을 교환했다. PC통신에 개설된 동호회의 움직임은 사회적으로도 큰 관심을 끌었다. 현 국가대표 축구대표팀 응원단을 지칭하는 ‘붉은 악마’도 PC통신 축구 동호회에서 탄생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월드와이드웹(WWW) 시대가 열리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무게 중심은 다음과 프리챌로 넘어갔다. 다음 카페는 1999년, 프리챌은 2000년 서비스를 시작하며 온라인 동호회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PC통신과 마찬가지로 공통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카페가 강세를 보였고, 회사나 학교 등 오프라인 관계가 온라인 커뮤니티로 확장되는 형태를 보였다.
싸이월드가 2001년 9월 탄생시킨 ‘미니홈피’는 한국 인터넷을 대표하는 서비스였다. 나만의 홈페이지를 꾸밀 수 있다는 욕구를 자극하면서 최대 가입자 3200만 명, 월 이용자 2000만 명을 확보한 국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됐다. 미니홈피 이용자 증가는 싸이월드가 서비스하던 커뮤니티 ‘싸이클럽’ 활성화로도 이어졌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의 경계가 낮아지게 된 계기로도 평가된다.
이후 모바일 기기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사진이나 이미지 중심의 인스타그램, 동영상을 공유하는 유튜브 이용자가 크게 늘었다. 최근 들어서는 관계보다 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가 선호하는 짧은 동영상(쇼트폼) 플랫폼 틱톡이 주목받았다.
○ 코로나19가 키운 ‘하이퍼로컬’
최근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이 지역 기반 커뮤니티로의 자리매김을 꾀하고 있다. 중고 거래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동네를 서비스 지역으로 설정했는데, 최근에는 중고물품 거래는 물론이고 거주 지역과 관련된 작은 소식을 전파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당근마켓을 통해 분실물을 찾거나,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것처럼 집 근처에서 함께 밥 먹을 사람을 구하는 것과 같은 일도 일어나고 있다. 네이버도 최근 동네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이웃톡 서비스를 내놨으며,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에서는 특정 지역 거주민만 모인 오픈채팅방이 활성화돼 있다.
정보기술(IT) 업계는 하이퍼로컬 기반 서비스의 강점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용이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역 맞춤형 광고와 뉴스, 근거리 물품 배송 등을 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때문에 생필품을 구하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하이퍼로컬 서비스를 활용하면서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분석업체 마켓 앤드 마켓은 하이퍼로컬 기반 시장 규모가 2019년 9730억 달러(약 1100조 원)에서 2026년 3조6343억 달러(약 4100조 원)로 연평균 약 18%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이퍼로컬을 활용한 서비스들이 대세 인터넷 커뮤니티가 될지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다. 새로운 대세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음성 기반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는 최근 이용자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제한됐던 사교 활동에 대한 욕구를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됐으나 콘텐츠 부족 등의 한계가 드러나며 인기가 시들해졌다.
하이퍼로컬 기반 서비스 역시 코로나19 확산이 끝나면 현재처럼 인기를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다만 당근마켓이 국민 서비스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월간 순이용자(MAU) 1000만 명을 넘어섰고, 네이버 등 빅테크 기업들이 유사한 서비스를 내놓는 만큼 인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이건혁 산업1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