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빌딩 대한민국]2부 포스트 코로나, 기업이 힘이다 <1> 기업 경쟁력, ‘안보 지렛대’ 부상 B·B·C, 진입장벽 높아 공급 제한적… 미래 첨단기술 이끌 기반산업 꼽혀 美-中 등 국가적 안보 사안으로 경쟁 “韓 B·B·C산업, 세계 선두 인정받아… 외교-안보협상 주요 카드 활용 기대”
‘안보 지렛대’로 떠오른 B·B·C 기업
16일 청와대 관계자는 “(백신 등) 바이오, 배터리, 반도체 협력 논의가 21일(현지 시간)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며 “삼성전자 등 기업 관계자들에게 미국 내 신규 생산라인 투자 등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달라고 협조를 구한 상태”라고 말했다.
삼성, SK, LG 등이 선제 투자로 기술력을 쌓아온 이른바 ‘BBC 산업’이 코로나19 백신 확보와 외교·안보 협상의 ‘촉매제’로 활용될 것이란 의미다. BBC는 바이오(Bio), 배터리(Battery), 반도체(Chip)를 뜻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BBC에 희토류를 더한 4대 분야를 핵심 산업으로 꼽으며 공급망을 점검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4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회담 일정에 동행하는 한국 BBC 기업들은 사실상 바이든 정부의 ‘초청장’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반도체 설계나 신약 개발에선 미국에 뒤처졌지만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제조 역량을 갖췄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선 대만에 이은 세계 2위지만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대규모 파운드리 투자 발표를 앞두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양분하는 전기자동차 배터리에선 한국이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 꼽힌다. 바이오의약품 생산량은 미국에 이은 2위로 아시아 생산망의 거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BBC 분야 한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코로나19 등 예기치 못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 역량을 넓힐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SK-LG 투자한 B·B·C, 美中 패권전쟁속 ‘안보 무기’로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BBC 산업은 모두 공급난이 발생할 경우 빠르게 대응방안을 찾기 힘들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반도체 부족으로 전 세계 자동차 생산라인이 멈춰선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진입장벽이 높아 공급이 제한적인 데 반해 각국 일자리와 국민건강, 미래 첨단 기술에 필수적인 기반 산업이다. 한국의 경우 삼성이 반도체, SK가 바이오, LG가 배터리 산업에 뛰어든 지 올해로 각각 39년, 28년, 29년째다.
특히 5nm(나노미터) 이하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기업은 한국의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두 곳뿐이다. 미국이 자국 기업인 인텔의 파운드리를 지원한다 해도 초미세공정 양산에는 시간이 걸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17%)은 대만 TSMC(54%)에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은 다양한 제조사를 본토 공급망에 포함시켜 위험요소를 줄이고 싶어 한다”며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71조 원 투자를 발표한 삼성전자나 파운드리 2배 확대를 앞세우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움직임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앞서 SK바이오사이언스는 미국 제약사 노바백스와 기술이전 위탁생산 계약에 성공했다. 노바백스 백신이 사용승인을 받는다면 국내 물량에 한해 SK가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어 백신 수급에 숨통이 트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이 선제적 투자와 연구개발(R&D)을 통해 주도권을 확보해 온 한국 전기차 배터리는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확보와 친환경 정책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 중이다.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중국 CATL, 한국 배터리 3사가 사실상 양분하고 있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견제하려는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 배터리 업체들과의 파트너십이 중요한 상황이다. LG, SK가 미국에서 영업비밀 침해 분쟁을 벌일 때도 미국 정부가 안정적 공급망을 위해 직접 개입한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제너럴모터스(GM)와 추가 합작사 설립 등 2025년까지 미국에 5조 원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조지아주 3, 4공장 추가 투자를 언급하는 등 미국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황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