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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달 빨리 피고 알 덜 낳고… 기후변화가 국립공원 생태계 바꿨다

입력 | 2021-05-18 03:00:00

국립공원 생태계 모니터링 보고서



기후변화의 영향은 국립공원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지난해 홍도 괭이갈매기(왼쪽 사진)의 번식 시작일이 관측 이래 가장 빠른 것으로 조사됐고, 구상나 무의 고사가 많아졌다. 동아일보DB


기후변화로 인해 국내 국립공원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 봄과 여름이 오는 시기가 빨라지면서 꽃피는 날짜와 동물이 번식하는 시기가 앞당겨졌다. 해발 1500∼2500m에 사는 상록침엽수의 수는 점점 줄고 있다.

17일 국립공원공단 소속 국립공원연구원이 발간한 ‘국립공원 기후변화 생태계 모니터링 보고서(2020년)’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변화는 국립공원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립공원 생태계 모니터링은 국립공원 생태계의 변화를 통해 기후변화 양상을 확인하고, 적절한 공원 관리 방안을 찾기 위해 2011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이른 봄에 동식물 식생 변화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기온 상승에 따라 꽃이 빨리 피는 것이다. 보통 4, 5월에 피던 복수초와 생강나무 꽃은 지난해 개화 날짜가 3, 4월로 앞당겨졌다. 여름에 피는 대표적인 꽃인 산수국 역시 통상 6월 말에 피던 것이 지난해엔 6월 초에 피었다.

이는 기상청이 발표한 최근 기후변화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기상청은 지난달 28일 과거 30년(1912∼1940년) 평균 기온과 최근 30년(1991∼2020년) 평균 기온을 비교한 결과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이 1.6도 올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봄과 여름의 시작일은 각각 17일과 11일 빨라지고 가을과 겨울 시작일은 각각 9일, 5일이 늦춰졌다. 기상청은 평균기온 추이에 따라 계절을 구분했다.

계절의 변화는 동물 번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산개구리가 처음 산란한 날짜는 1월 23일이었다. 2010년부터 산란 시기를 관찰했지만, 1월 산란이 확인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2010년 첫 관찰 때 2월 22일이었던 산개구리의 첫 산란일은 10년 새 한 달 가까이 앞당겨졌다. 소백산국립공원에 사는 박새 역시 첫 산란일이 2011년 4월 21일에서 지난해 3월 28일까지 당겨졌다.

도서지역 생태계 역시 기후변화 영향을 받았다. 지난해 한려해상국립공원 홍도에 사는 괭이갈매기의 번식 시작일(철새 무리가 번식지에 하루 종일 머물기 시작하는 시점)은 3월 29일이었다. 조사를 시작한 2011년(4월 17일) 이후 가장 빠른 것이다.

반면 첫눈이 내리는 날짜는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보고서는 “모든 국립공원에서 첫눈이 내리는 시기가 늦어지는 경향이 나타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 지리산국립공원과 설악산국립공원의 첫눈은 2012년 대비 각각 23일과 21일 늦었다. 2010년 소백산국립공원과 태백산국립공원의 첫눈은 11월 초면 볼 수 있었지만 지난해는 11월 말에야 첫눈이 확인됐다.


○기후변화에 사라지는 동식물
기후변화로 인해 사라지는 동식물도 다수 확인됐다. 대표적인 것이 해발 1500∼2500m 지점의 아(亞)고산대에 사는 상록침엽수다. 설악산국립공원 내 분비나무 군락에서는 2011년 이후 지속적인 고사(枯死)가 진행됐다. 2013년 이후엔 분비나무 대부분이 고사한 상태다.

연구진은 그 원인을 겨울철 강설이 줄어든 데서 찾았다. 보고서는 “겨울철에 쌓이는 눈은 지표면에 필요한 수자원을 봄까지 보존하는 역할을 해 왔다”며 “겨울철 적설량 감소가 봄철 가뭄으로 연결되면서 아고산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기후변화에 따라 최근 연간 강수량이 여름철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로 많이 사용되는 구상나무도 국립공원 내 숫자가 줄고 있다. 덕유산국립공원 향적봉 지역에 있는 구상나무 군락에서는 지난해 유난히 많은 고사가 발생했다. 연구진이 죽은 나무를 살펴본 결과 줄기가 절단되거나 기울어져 고사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해 지면이 무너지거나 태풍에 의해 나무가 절단된 것으로 추정됐다. 집중호우와 태풍이 잦아지는 것 역시 이상기후 현상에 해당된다.

한려해상국립공원 홍도에 사는 괭이갈매기도 그 수가 줄고 있다. 연구원들이 괭이갈매기가 번식 기간에 낳는 알의 숫자를 헤아려본 결과 지난해 마리당 평균 1.8∼1.9개로 2011년(1.9∼2.0개)보다 줄어들었다.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해 괭이갈매기가 주로 먹는 멸치 등 먹잇감이 줄어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립공원연구원은 “국내 해수 온도가 오르며 해양 생태계 변화가 감지된 만큼 이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향후 바닷새 번식 생태뿐 아니라 섬의 외래 식물 출현 및 식생 변화도 모니터링하겠다”고 설명했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국내 섬에서 열대식물 분포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이를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