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이전 대상도 아닌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이 세종시에 신청사를 짓고 ‘공무원 특별공급(특공)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물론 관세청은 특공을 노리고 세금 171억 원을 들여 새 청사를 지은 게 아니라고 17일 해명했다.
미안하지만 못 믿겠다. 특공을 노린 게 아니라면 관평원 당시 직원 82명 전원이 아파트 분양 신청을 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이 중 49명이 성공했다. 일반분양이면 최소한 150 대 1, 특공이래도 7.5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데 관평원은 무슨 재주인지 2 대 1도 안 되는 당첨률을 기록했다. 당장 판대도 다섯 배 이상 앉은 자리에서 불로소득을 거둔 것이다.
세종시 아파트단지 전경. 올해 3월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에 따르면 세종시 주택 공시가격은 1년 상승률이 70.68%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이들 중 몇 명이나 새 아파트에 이사해 대전청사로 출퇴근하는지 알 수 없다. 재수 좋게 국토교통부 장관 자리에 안착한 노형욱처럼 분양받은 특공 아파트를 전세 놓고 서울 강남에서 출퇴근하다 몇 년 뒤 팔아 차액을 챙길지도 모를 일이다.
● 혈세로 지은 세종시 신청사·특공 아파트
금항아리의 맛있는 술은 천백성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금준미주천인혈)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일세(玉盤佳肴萬姓膏·옥반가효만성고)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몽룡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관평원이 세종시에 지은 호화청사는 국민의 혈세로 지었다. 멀쩡한 대전청사를 두고 유령 건물로 비워 놓았으니 이런 혈세 낭비가 없다. 그들의 세종시 아파트 역시 민간인은 당첨되기 어려운 옥쟁반의 좋은 안주다. 이 정부 공직자들은 아주 작당을 한 듯 국민의 고혈(膏血·사람의 기름과 피)을 짜내 흥청망청 누리고 있다는 얘기다.
김부겸 총리가 이 문제를 엄정 조사할 것을 명했다. 신청사 착공을 강행한 당시 김영문 관세청장(현 한국동서발전 사장)이 수상한 건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경남고 출신이고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민정수석 밑에서 행정관을 지낸 ‘빽’을 믿고 밀어붙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2018년 3월 행정안전부가 관세청에 “이전 불가 통보”를 할 때 행안부 장관이 바로 김부겸이다. 그때 자신이 무슨 도장을 찍었는지 기억도 안 난단 말인가?
김영문 전 관세청장(현 한국동서발전사장)
● 춘향전 때나 지금이나 쥐어짜는 게 관료냐
‘숙종대왕 직위초의 셩덕이 너부시사…’로 시작하는 춘향전은 숙종 재위(1674~1720) 때를 요순 시절로 묘사한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임란과 호란을 거친 뒤 너무나 삶이 힘겨운 나머지 ‘열녀춘향수절가’는 이상적 사회를 노래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17세기 한시 중에는 관의 가렴주구(苛斂誅求·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를 다룬 내용이 적지 않다. 사극에서 익히 보듯 숙종이 장희빈을 끼고 돌 때 영국에선 명예혁명(1688년)에 이어 권리장전(1689년)을 제정하고 있었다. 숙종이 변덕이 죽 끓듯 해서인지 권력놀음에 지쳐서인지 장희빈 내치고 인현왕후를 복위시킬 때 서양의 제국들은 더 큰 시장과 세계를 찾아 동양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마치 문 정권 주류세력이 요 좁은 땅덩어리에서 쪼금이라도 더 해먹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지금, 바깥에선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와 중국의 전체주의가 세계의 패권을 놓고 패러다임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올해 3월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국-중국 고위급 회담 모습. 양국은 인권 문제를 놓고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앵커리지=AP 뉴시스
● 조선의 가난은 흡혈귀 관료 때문
1830년대 조선을 찾아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카를 귀츨라프는 관리들이 옷도 우아하게 입고 잘사는 반면 백성들은 가난하게 사는 나라라고 기록했다. “정부가 주민들이 노동의 열매를 즐기도록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은 수도 없이 반복된다. 1866년부터 2년간 세 차례 조선을 탐사한 뒤 ‘금단의 나라: 조선기행’을 쓴 독일의 유대계 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모든 관직은 가장 높은 값을 낸 사람한테 주어지고 관직을 차지한 사람들은 아랫사람을 상대로 강도와 수탈, 약탈과 착취를 저지른다”고 썼다.
“개혁작업을 수행했던 때 조선에는 강도와 강도를 당하는 사람이 두 계급이 존재했다. 강도는 물론 군대를 포함한 관료체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 이르기까지 관리들은 백성들을 쥐어짰으며(squeezing) 공금을 횡령했다. 모든 관직들은 매관매직됐다. 조선 의 관리는 백성의 생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다.”
● 누구 마음대로 조세법정주의 무시하나
프랑스 출신 달레 신부가 ‘꼬레의 교회의 역사’(1874년)에서 소개한 당시 세정(稅政)은 문 정권으로 바꿔놔도 이상하지 않다. “법정세금은 실제에 있어선 탐욕스러운 수령과 관리들이 백성에게서 빼앗아가는 금액의 작은 부분을 나타내는 데 지나지 않는다. 세금 징수의 기준이 되는 호구조사대장도 도무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기업들이 법인세 말고도 반드시 내야만 하는 준조세가 법정세금과 거의 맞먹는다. 2018년 법인세로 71조 원을 냈음에도 기업이 흑자든 적자든 기부금 등의 명목으로 63조 원을 바쳤다는 게 전국경제인연합회 분석이다.
부동산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도 도무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심지어 두 달 전 경실련은 “1990년 공시지가 도입 이후 국토교통부가 표준지 가격 조사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다”며 “엉터리 변명으로 과세 기준을 왜곡하고 있다”고 질타했을 정도다.
지난해 10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문재인 정부의 정확한 부동산 가격 책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그렇다고 경실련 주장대로 공시지가를 대폭 올리는 것도 옳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져 모두가 살기 힘든 때는 세금도 내려주는 게 선정(善政)의 기본이다. “국민 재산을 함부로 여기고 엉망진창으로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불공정하다. 조세는 반드시 법률로만 매기게 한 헌법의 조세법률주의를 어기는 것”이라고 준열히 지적한 원희룡 제주지사 말이 백번 맞다.
● 당신들의 폭정, 언제까지 참아줄 것 같은가
고종의 시의(侍醫)로 봉직했던 독일인 리하르트 뷘슈는 1903년 “나라가 재정적으로 놀랍게 메말라버렸고 남부지방에서는 세금이 혹독하다고 폭동이 일어났다”고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썼다. “한국 정부는 병원을 짓는 것과 같은 일에는 한 푼도 안 쓰고 유치한 일에는 수천 냥을 바치니 계산능력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라는 대목은 문 정권이 제발 좀 읽어봤으면 좋겠다. 더불어민주당의 실질적 ‘오너’인 이해찬은 2019년 당 대표 시절 “정조 대왕 이후 219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10년과 문 대통령 2년 등 12년을 빼고는 일제강점기거나 독재 또는 아주 극우적인 세력에 의해 나라가 통치됐다”며 ‘20년 아니라 더 오래 집권욕’을 드러낸 바 있다. 미안하지만 정조는 계몽군주가 아니고(왕권 강화에 매달린 절대군주였다), 당신들은 개혁세력이 아니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국민을 쥐어짜내 제 배만 불리는 가렴주구 세력일 뿐임을 국민은 진작 알아버렸다. 4월 재·보선 야당 승리가 그 증거다. 한때 운동권이었던 자기편은 법 위에 존재하고, 공공기관 공귀족들은 국민 위에 존재하는 당신들의 계급의식은 소련과 함께 사라졌어야 할 구태에 불과하다. 대깨문 아닌 진짜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이 세금으로 흥청대는 당신들의 학정(虐政)을 언제까지 참아줄 것 같은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