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광주참상 알린 유인물
부산-대구 등 전국서 통참해 눈길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는 21일 박용준 투사회보체 글꼴을 공개한다. 박용준 투사회보체는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5·18기념재단, 들불열사기념사업회, 광주YWCA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디지털 글꼴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금을 모금하는 기간은 4월 9일부터 이달 27일까지다. 20일까지 시민 200명이 참여해 900만여 원이 모였다. 특히 기부자 절반은 부산과 대구, 경기 안산 등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었다. 부산 시민은 “광주에 빚이 있어 후원하게 됐다”고 했고, 대구 시민은 “후대 사람들이 5·18을 기억해주면 좋겠다”며 모금에 참여했다. 3만 원 이상 기부자에게는 박용준 투사회보체로 이름을 새긴 도장을 선물로 준다.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는 21일 오전 10시 반 5·18기념재단에서 박용준 열사 투사회보체 글꼴 발표회를 갖는다. 5·18기념재단 제공
황석현 다온커뮤니케이션 대표(45)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관심이 많아 평소 5·18기념서체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21일 광주를 방문한다.
고아였던 박 열사는 광주영신원과 무등육아원 등 복지시설에서 성장했다. 1960년대 후반 중학교를 졸업할 때 1400원을 내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야간고등학교 재학 시절 구두닦이와 인쇄공 등으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1973년 광주YWCA 신협에 입사한 뒤 1978년 광주지역의 첫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에 참여했다. 인쇄 기술과 글씨체가 좋았던 박 열사는 5·18 당시 야학교사, 학생들과 함께 투사회보를 제작해 배포했다. 투사회보는 1980년 5월 21일부터 26일까지 10회 제작됐다. 각 호마다 1만∼3만 장을 발행했다.
투사회보는 신군부의 검열로 언론이 광주의 참상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고 있을 때 광주의 진실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박 열사는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1980년 5월 27일 새벽 광주 동구 대의동 광주YWCA에서 숨졌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