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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절망감이 부추기는 복수극 팬데믹[이승재의 무비홀릭]

입력 | 2021-05-21 03:00:00

영화 ‘올드보이’ 중 장도리 액션 장면. 롱테이크 촬영을 통해 박찬욱 감독은 ‘복수는 행하는 놈이나 당하는 놈이나 모두 자신의 영혼을 파괴할 뿐’이란 메시지를 전한다. ‘올드보이’ DVD 캡처


[기]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년) 속 그 유명한 장도리 액션 장면을 기억하시지요? 사설 감옥에 자신을 가둔 채 15년간 군만두만 퍼 먹인 조폭 일당을 찾아간 최민식이 장도리 하나 들고 17 대 1로 싸워 작살내는 2분 40초가량의 롱테이크(하나의 쇼트를 길게 촬영하기)는 동서고금 ‘17 대 1’ 중 단연 최고예요. 놀랍게도 카메라는 복수심에 잠식된 최민식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아요. 원거리에서 트래킹 숏(레일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찍는 촬영법)을 통해 최민식과 조폭이 떼로 얽힌 지옥도를 거리를 두고 바라볼 뿐이죠. 마치 고대 그리스 벽화를 보는 듯한 원초적이고 신화적인 이미지를 통해 박찬욱은 말해요. 복수는 행하는 놈이나 당하는 놈이나 모두 영혼을 파멸시키는 원죄일 뿐이라고요. 절실한 복수이든 사소한 복수이든 복수를 결심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된다는 점에서, 복수는 끔찍하지만 영화의 매력적인 소재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승] 요즘 TV만 켜면 복수극이 거의 ‘팬데믹’ 수준이에요. 배우 이제훈 주연의 드라마 ‘모범택시’는 요즘 제가 채널A ‘강철부대’ 다음으로 좋아해요. 복수를 대행해주는 비밀업체의 에이스인 이제훈은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근무엔 신경도 쓰지 않는 올 타임 복수 전도사예요. 검은색 모범택시를 몰고 지하 비밀기지에서 쓱 올라와 출격하는 그의 모습은, 공권력을 개에게나 줘버린 고담시티에서 정의를 구현하려 배트모빌을 타고 지하기지를 나서는 배트맨을 연상시키지요. 이제훈은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나쁜 놈들을 붙잡아 사설 감옥에 가두는데, 세상에나! 사설 감옥을 위탁 운영하는 지하세계의 ‘대모’ 차지연은 이렇게 포획한 나쁜 놈들의 장기를 빼내 팔아먹는다고요!

아, 그런데 이 순간 저는 길티 플레저 비슷한 쾌감을 느낀단 말이에요. 만약 장기밀매단의 장기를 빼내어 밀매한다면 그건 나쁜 놈일까요, 더 나쁜 놈일까요, 아니면 덜 나쁜 놈일까요? 어차피 10년 남짓 감방에서 우리의 피 같은 세금으로 공짜로 먹고살다 나와 또다시 나쁜 짓을 할 놈들이라면, 아예 그놈들의 방식으로 끝장을 내는 게 진짜 정의요 응징이 아닐까, 하는 불온한 생각을 한 번쯤 해보는 거죠. 심지어 이 드라마에서 이제훈의 사적(私的)인 복수대행 행위를 눈치채고 뒤를 쫓는 정의로운 검사(이솜)도 동료 수사관이 악당에게 목숨을 잃자 완전 돌아버리면서 이제훈에게 복수를 의뢰한단 말이지요. 피해자들이 희망을 잃고 자책할 때 복수대행업체는 이런 무지막지하고 속 시원한 위로를 전한다고요.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와우, 맞아요. 권력 가진 포식자들이 법, 정의, 공정, 평등 같은 단어들로 페인트 모션을 쓰면서 결국엔 약자들을 날름 잡아먹어버리는 약육강식의 이 세상에선 누구도 나를 보호해 주거나 나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없다는 벼랑 끝 절망감이 사적 복수극에 열광하는 집단적 히스테리로 폭발하는 거죠.

[전] 송중기 주연의 드라마 ‘빈센조’는 한술 더 떠요. 사이코패스 악당을 마피아 변호사가 끝장내 버려요. 엄청나게 잘생긴 바람에 우리가 자꾸만 까먹어서 그렇지, 송중기는 극악무도한 마피아라고요. 이 마피아는 금괴를 차지하려고 내한했다가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보다 훨씬 더 나쁜 악당들을 만나 ‘참교육’을 시전하지요. 송중기는 악당들을 겁주거나 경고하지 않아요. “난 너의 속죄엔 관심 없어. 네가 고통스러우면 돼” 하며 그냥 죽여버려요. ‘법꾸라지’들에겐 서슬 퍼런 응징이 ‘진짜 법’이란 사실을 절감케 해주지요. 게다가 송중기의 단짝인 변호사 전여빈은 “유능하면 부패해도 된다는 게 이 나라의 트렌드예요”라는 트렌디한 진단까지 작금의 대한민국에 내리며 공감대를 뿜뿜 늘리지요.

[결] 하지만 복수는 허무해요. 복수를 다룬 박찬욱의 작품 중 최고봉인 ‘복수의 나의 것’(2002년)만 해도 그래요. 왜 제목이 ‘복수는 나의 것’이겠어요? 누구나 자신만의 절박한 복수를 하겠지만, 복수는 도미노처럼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 복수는 결국 ‘모두의 것’이 되는 동시에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단 말이죠.

무언가를 철폐하고 척결하고 청산하고 개혁하는 데 성공하셨다고요? 축하드려요. 짝짝짝. 지금부터 당신은 또 다른 누군가의 철폐와 척결과 청산과 개혁의 대상으로 등극하셨으니 말이에요. 복수는 결코 나의 것으로 남을 수 없답니다.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