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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가슴에 품은 ‘아폴로 키드’의 꿈[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입력 | 2021-05-21 03:00:00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아폴로 11호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가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우주의 먼지가 되었다. 1969년 7월 20일, 내가 아홉 살일 때 아폴로 11호 우주선이 달에 도착했다. 나는 그 사실도 모른 채 프로레슬러 김일의 경기를 보러 동네 만홧가게에 갔다. 동네에선 유일하게 흑백 TV가 있는 곳이었다. 당시 김일의 프로레슬링 경기를 본다는 것은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주말 행사였다. 지금까지도 내겐 남몰래 간직한 꿈이 하나 있는데, 바로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는 꿈이다. 낮에는 물리학자, 밤에는 프로레슬링 선수!

그런데 그날 내가 본 것은 김일의 프로레슬링 경기가 아니라 인간의 달 착륙 장면이었다. 닐 암스트롱의 오른쪽 발이 달을 밟았다. 프로레슬링 중계를 안 했으니 아쉬운 마음에 삐딱한 자세로 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당시 흑백의 달 착륙 화면이 아직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상당한 충격이었던 듯싶다. 살다 보면 어떤 순간은 내내 잊히지 않고 마음속에 고이 간직된다. 아마도 나에게는 그때가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할까?’ 부럽기도 했고 마음 한편에서는 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당시 현실에서는 달나라에 간다는 것은 내가 꿈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마음속 풍경이 하나의 씨앗이 되어 물리학자가 되었다. 달나라에서 날아온 전파가 한 소년에게 꿈을 선사한 것이다. 이런 꿈을 선사한다는 것, 어쩌면 과학이 지닌 최고의 멋진 기능이 아닐까.

마이클 콜린스는 인류에게 우주탐사는 선택할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미지의 세상에 직접 가보려고 하는 호기심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최근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등 우주항공 기업들 간의 경쟁이 뜨겁다. 베이조스는 다섯 살 때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을 보고 자란, 소위 ‘아폴로 키드’다. 그 후 그는 우주 드라마 ‘스타트렉’을 보며 우주를 향한 꿈을 키웠다. 머스크 역시 아이작 아시모프의 공상과학(SF) 소설을 읽으며 우주를 동경해 왔다.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는 한 번에 100명씩 화성에 보낼 수 있는 우주선의 수직 착륙을 4전 5기 끝에 성공시켰다.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은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한 날에 맞춰 올해 7월 20일 민간인 탑승객을 태운 유인우주선을 출발시킬 예정이다. ‘아폴로 키드’인 두 사람은 지구와 같은 기능을 가진 소행성을 우주 공간 어딘가에 언젠가는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얼마 전 모임에서 나는 이 두 사람의 우주 경쟁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누군가가 아폴로 우주선 달착륙선 조작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우주선의 엔진이 갑자기 꺼지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 중국 화성탐사선 톈원1이 화성 유토피아 평원 남부에 착륙했는데도 이런 말이 나오다니. 지구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은 자신만의 꿈을 간직하는 일이다.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으면 행운이지만. 설령 실현시키지 못하고 우주의 먼지가 된다고 할지라도, 누구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세상은 멋진 일이다. 아직도 마음의 다른 한구석에선 레슬링 선수가 되고 싶은 나의 꿈처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