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그런데 그날 내가 본 것은 김일의 프로레슬링 경기가 아니라 인간의 달 착륙 장면이었다. 닐 암스트롱의 오른쪽 발이 달을 밟았다. 프로레슬링 중계를 안 했으니 아쉬운 마음에 삐딱한 자세로 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당시 흑백의 달 착륙 화면이 아직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상당한 충격이었던 듯싶다. 살다 보면 어떤 순간은 내내 잊히지 않고 마음속에 고이 간직된다. 아마도 나에게는 그때가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할까?’ 부럽기도 했고 마음 한편에서는 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당시 현실에서는 달나라에 간다는 것은 내가 꿈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마음속 풍경이 하나의 씨앗이 되어 물리학자가 되었다. 달나라에서 날아온 전파가 한 소년에게 꿈을 선사한 것이다. 이런 꿈을 선사한다는 것, 어쩌면 과학이 지닌 최고의 멋진 기능이 아닐까.
최근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등 우주항공 기업들 간의 경쟁이 뜨겁다. 베이조스는 다섯 살 때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을 보고 자란, 소위 ‘아폴로 키드’다. 그 후 그는 우주 드라마 ‘스타트렉’을 보며 우주를 향한 꿈을 키웠다. 머스크 역시 아이작 아시모프의 공상과학(SF) 소설을 읽으며 우주를 동경해 왔다.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는 한 번에 100명씩 화성에 보낼 수 있는 우주선의 수직 착륙을 4전 5기 끝에 성공시켰다.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은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한 날에 맞춰 올해 7월 20일 민간인 탑승객을 태운 유인우주선을 출발시킬 예정이다. ‘아폴로 키드’인 두 사람은 지구와 같은 기능을 가진 소행성을 우주 공간 어딘가에 언젠가는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얼마 전 모임에서 나는 이 두 사람의 우주 경쟁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누군가가 아폴로 우주선 달착륙선 조작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우주선의 엔진이 갑자기 꺼지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 중국 화성탐사선 톈원1이 화성 유토피아 평원 남부에 착륙했는데도 이런 말이 나오다니. 지구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은 자신만의 꿈을 간직하는 일이다.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으면 행운이지만. 설령 실현시키지 못하고 우주의 먼지가 된다고 할지라도, 누구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세상은 멋진 일이다. 아직도 마음의 다른 한구석에선 레슬링 선수가 되고 싶은 나의 꿈처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