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외국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나부터도 한국의 집값, 코로나19 대응 등에 대한 의견을 갖고 있으며 각종 토론에 참여하고 싶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목소리를 높이기에는 눈치도 보이고 조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국블로그’라는 이 칼럼을 쓴 지가 벌써 몇 년이 되었다. 그동안 일상 속 해프닝부터 한국 생활의 좋은 점,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까지 다양한 주제를 언급했다. ‘무플보다 악플, 악플보다 선플이 좋다’고 하지만 외국인이라 더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이 칼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온라인 댓글을 열심히 읽었다. 물론 좋은 멘트가 적지 않았지만 ‘네가 뭔데?’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댓글을 읽을 때는 서운하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정신건강을 위해서 댓글을 읽지 않기로 했다.
요새 많은 방송에 외국인들이 출연한다. 과거에는 ‘답정너’인 상황이라고 들었다. 제작진은 진행자의 질문에 실제 의견이 아닌 대본에 있는 준비된 답만 외워 말하길 원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상세한 사전 인터뷰로 관점에 알맞은 이야기를 선정하는 것 같다.
몇 년 전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이었다. 그런 말이 생긴 이유를 알아보려고 관련 기사를 많이 읽었다. 글 작성자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동의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14년을 사는 동안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다. 나에게 한국은 ‘헬조선’도 아니고 ‘대한천국’도 아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내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계속 살고 있는 것이다. 14년 동안 한국은 큰 변화도 있었고 나 역시도 한국 문화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사회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물론 아직까지 많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와 전문성이 쌓였다고 생각된다.
내가 출연하는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한국 사람과 별 차이 없다’거나 ‘한국패치 달았네’라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 사람처럼 어떤 사회 이슈에 대해서 언급할 때면 눈앞에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있는 듯해 토론에 참여하기가 힘들다.
나는 급진론자도 아니고 나의 가치관은 충분히 정상적인 범위 안에 있다고 믿는다. 한국에서 오래 살았으니, 외부인으로는 보일지라도 적어도 ‘관계자’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영주권까지 얻었으니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제한구역에 들어갈 수 있게 허용되는 출입증은 얻은 셈이다. 내가 항상 옳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말을 듣고 모두가 반드시 동의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 발언의 결과물이 영국행 편도 비행기표가 아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