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도 10폭 병풍 일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당 현종과 양귀비는 모란꽃 감상회를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태백은 이때 한림학사로 초대받아 마음껏 아양을 떨었다. “명화와 경국지색이 어울려 왕의 얼굴에 미소 가득하네”로 시작하는 ‘청평조사’는 이때 지어졌다.
꽃이 아름다우면 뿌리의 약효도 좋을 듯하지만 반대다. 본초강목은 “많은 거름과 토양으로 색다른 진귀한 꽃을 피우면 뿌리는 약효가 없다”고 지적한다. 한의학에서 모든 존재는 완벽한 태극으로 이뤄져 음양의 양면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겉이 딱딱한 것은 속이 부드럽다. 자라 거북은 껍데기는 단단하지만 속 몸통은 부드럽다. 반대로 복숭아나 자두는 겉은 부드럽지만 속은 단단한 씨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같다. 음과 양은 존재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모란의 껍질(목단피)은 찬 성질과 매운맛으로 상부의 열을 내리며 막힌 곳을 뚫어준다. 한마디로 갱년기 증상에 딱 맞춤인 약이다. 효종의 왕비였던 인선왕후 장씨는 효종이 죽고 난 다음부터 갱년기 증세를 심하게 앓았다. 남편 효종과 중국 선양(瀋陽)으로 끌려가 8년간 볼모 생활을 할 때의 마음고생이 컸다. 효종이 임금에 오른 지 10년 만에 단명하고 남편 효종의 아들 현종이 왕위를 잇자 인선왕후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승정원일기는 당시 인선왕후의 증상에 대해 “심화(心火)가 끓어올라 머리가 아프고 저녁이 되면 열이 오르며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반복되었다”고 쓰고 있다. 인선왕후는 온갖 심리적 증상과 불면증, 우울감 등 갱년기 여성 대부분이 호소하는 증상을 모두 호소하고 있었다. 인선왕후는 이런 전형적 갱년기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가미소요산과 자음지보탕에 목단피를 넣어 5년여간 복용했다.
시인 김영랑에게는 지는 모란꽃이 ‘찬란한 슬픔’일지 모르지만 갱년기를 넘어선 여성에게는 더욱 성숙해진 모란 뿌리가 인생 후반기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신비의 묘약’이 될지도 모른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