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01월 01일
플래시백
‘광화문 앞을 지금도 6조 앞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광화문 앞 좌우편에 있는 관공서가 어떻게 변천됐는지 아무쪼록 자세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동아일보 1925년 1월 1일자 6면 ‘독자와 기자’란에 소개된 독자 요청입니다. 조선시대 의정부 조직이 1894년 갑오개혁으로 바뀐 지 31년, 조선총독부 체제가 자리 잡은 지 15년이 지난 시점이니까 광화문 앞 모습도 무척 달라졌을 테죠. 변천 내력이 궁금할 듯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 민족에게는 의정부 이조 예조 호조 병조 형조 공조가 늘어서 있던 예전 광화문 앞이 친숙했겠죠.
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文武官員(문무관원) 送迎(송영)하는
荊棘(형극) 中(중) 銅駝(동타)
◇옥관자 금관자에 팔자 거름 치든
◇녯날 륙조 압은 그동안 엇지 변천
◇┈┈光化門通(광화문통)의 回顧談(회고담) 片片(편편)
광화문 압흘 지금도 륙조 압히라고 하지 안슴닛가. 광화문 압 좌우편에 잇는 관공서가 엇더케 변천된 것을 아모조록 자세히 가르처 주시기 바랍니다.
中學洞(중학동) 一讀者(일독자)
지금 날마다 지내다니면서도 그곳에 무엇이 잇든가 생각하면 아리송 아리송하야 자세히 몰으겟는데 녜전 것을 가르치라니 좀 어렵습니다마는 새로 독자와 긔자란을 설시한 뒤에 이만 문뎨를 어렵다고 고만 둘 길이 업서서 곰곰 생각도 하고 로인에게 뭇기도 하야 대답하야 들입니다.
잔소리 고만두구요. 그 해태 압헤서 광화문을 등지고 나려가자면 왼편 첫재가 의정부 조방(議政府朝房)이요 그 다음이 의정부요 그 다음이 사헌부(司憲府)요 그 다음에 례빈소(禮賓所) 골목이 잇고 그 다음이 리조(吏曹) 그 다음이 례조(禮曹) 그 다음이 호조(戶曹) 그 다음에 호조 뒷골이 잇고 길 아레에 한성부(漢城府)와 기로소(耆老所)가 잇섯고요 올흔편 첫재는 삼군부(三軍府) 그 다음이 사간원(司諫院) 그 다음이 중추부(中樞府) 그 다음이 병조(兵曹) 또 그 다음이 형조(刑曹) 맨끗이 공조(工曹)요 중추부 우에 사온서(司醞署) 골목이 잇고 공조 아레에 공조 뒷골이 잇섯담니다.
갑오 이후 각부(各部)가 생긴 뒤에 전 의정부 자리는 내부(內部)가 되고 사헌부 자리는 관보과(官報課)가 되고 리조 자리는 외부(外部)가 되고 례조가 학부(學部)로 변하고 호조가 탁지부(度支部)로 변하고 한성부는 처음에 경무텽(警務廳)이든 것이 농상공부(農商工部)와 밧굼질을 하고 길끗헤 전에 업든 긔념비각(紀念碑閣)이 생겻는데 그 비각은 지금 눈이나 비를 그너가기에 십상 조흔 자리가 되얏고요. 왼편으로 삼군부에는 시위이대(侍衛二隊) 영문이 들어안고 사간원은 헌병대사령부(憲兵隊司令部)가 되얏다가 맨 나종에 잠간 경시텽(警視廳)이란 것으로 변하얏고 중추부는 농상공부가 되얏다가 경무텽과 밧구게 되고 병조는 군부(軍部) 형조는 법부(法部) 공조는 통신원(通信院)이 되얏슴니다.
지금 의정부 조방자리는 빈 터가 되얏고 내부자리에는 경긔도텽(京畿道廳)이 잇고 외부자리에는 순사강습소(巡査講習所)가 잇고 탁지부를 법학전문학교(法學專門學校)가 차지하고 그 아레 잇든 농상공부와 기로소는 빈 터전만 남어 잇고요. 길 건너로 시위이대 영문에는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가 잇고 경무텽이 잇는데 경시텽이라고 따로 생겻든 곳에는 순사긔숙사(巡査寄宿舍)가 잇고 군부는 조선군사령부분실(軍司令部分室)이 되고 법부는 뎐화교환소(電話交換所) 광화문분국(光化門分局)이 되고 통신원은 톄신국(遞信局)이 되얏슴니다.
한 번 가서 보고 대답하면 자세히 할 수도 잇건만 과세에 밧부어 가보지 아니하고 생각하야 적으니 미신한 곳이 적지 안습니다. 혹 틀린 것이나 업나 한 번 가서서 좌우 쪽을 모조리 조사하야 보시면 조켓습니
국초에 경복궁 대궐을 지엿슬 때 뎡도뎐이라는 이가 궁과 궁문과 모든 뎐각 일홈을 지어 바첫는데 경복궁 일홈을 잘 지엇다고 칭찬바덧든 것이 오늘은 조선총독부가 되얏슴니다 그려.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니 감구지회가 업슬 수 업슴니다.
讀者(독자) 記者欄(기자란)과
第一回(제1회) 記者(기자) 課題(과제)
독자가 뎨목을 내인 것으로 긔자가 긔사하는 독자(讀者) 과뎨(課題)와 긔자가 뎨목을 내인 것으로 독자가 긔사하는 긔자(記者) 과뎨(課題)의 흥미잇는 첫 시험은 임의 발표한 바와 갓거니와 그동안에도 벌서 독자로부터 여러 가지 문뎨가 들어와서 위선 한 가지는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전 발표와 가치 뎨일회 긔자 과뎨를 한 번 더 발표하노니 오는 십오일 안으로 상세히 조사해 보내시기를 바람니다.
◇第一回(제1회) 記者(기자) 課題(과제)
一(1)、百歲(100세) 長壽者(장수자) 二(2)、十二歲(12세) 新郞(신랑) 三(3)、열 번 이상 살림한 妓生(기생)
이상 각뎨에 대하야 주소 년령 성명、성질、언행 등 자신에 관한 일톄 사항은 물론、문벌 디위、재산 친족의 유무와 형편(특히 배우자)이며 일화(逸話) 애사(哀史) 세평(世評)까지라도 빼지 안코 상세히 긔록하되 특히 기생 배우자의 살림하든 전후의 사실(례를 들면 가산 탕진의 상태 비관 자살 타락 몰락 혹은 행복 등 일톄)을 일일이 적되 인신을 공격하는 것은 절대로 밧지 안코 오직 사실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외다.
◇긔재된 글에 대하야는 상당한 사례를 하며 사진(寫眞)까지 보낼 때는 특히 사진갑을 진뎡함.
현대문
문무관원을 송영하던
황폐화된 6조 거리
◇벼슬아치들 팔자걸음 걷던
◇옛날 6조 앞은 그동안 어떻게 변하였나
◇┈┈광화문통의 회고담 토막토막
광화문 앞을 지금도 6조 앞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광화문 앞 좌우편에 있는 관공서가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아무쪼록 자세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중학동의 한 독자
지금 날마다 지나다니면서도 그곳에 무엇이 있었던가 생각하면 아리송아리송하여 자세히 모르겠는데 예전 일을 가르치라니 좀 어렵습니다마는 새로 독자와 기자란을 마련한 뒤에 이만한 문제를 어렵다고 그만 둘 길이 없어서 곰곰이 생각도 하고 노인에게 묻기도 하여 대답하여 드립니다.
광화문 앞에 좌우 쪽으로 해태가 있었지요. 지금 우리들은 그 해태를 눈에 환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마는 장래 아이들은 할머니나 어머니가 해태 앞에 갔다 왔다고 하면 해태 앞이라니 어디 말씀이요? 할 것이올시다. 해태는 오밤중에 도적놈이 도적질하듯 집어치워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잔소리 그만두고요, 그 해태 앞에서 광화문을 등지고 내려가자면 왼편 첫째가 의정부 조방이고 그 다음이 의정부요, 그 다음이 사헌부요, 그 다음에 예빈소 골목이 있고 그 다음이 이조, 그 다음이 예조, 그 다음이 호조, 그 다음에 호조 뒷골목이 있고 길 아래에 한성부와 기로소가 있었지요. 오른편 첫째는 삼군부, 그 다음이 사간원, 그 다음이 중추부, 그 다음이 병조, 또 그 다음이 형조, 맨 끝이 공조이고 중추부 위에 사온서 골목이 있고 공조 아래에 공조 뒷골목이 있었답니다.
갑오경장 이후 각 부가 생긴 뒤에 전 의정부 자리는 내부가 되고 사헌부 자리는 관보과가 되고 이조 자리는 외부가 되고 예조가 학부로 변하고 호조가 탁지부로 변하고 한성부는 처음에 경무청이던 것이 농상공부와 자리를 바꿨지요. 길 끝에 전에 없던 기념비각이 생겼는데 그 비각이 지금 눈이나 비를 잠깐 피하기에 아주 좋은 자리가 되었지요. 왼편으로 삼군부에는 시위이대 영문이 들어앉고 사간원은 헌병대사령부가 되었다가 맨 나중에 잠깐 경시청이란 것으로 변하였고 중추부는 농상공부가 되었다가 경무청과 바꾸게 되었고 병조는 군부, 형조는 법부, 공조는 통신원이 되었습니다.
지금 의정부 조방 자리는 빈 터가 되었고 내부 자리에는 경기도청이 있고 외부 자리에는 순사강습소가 있고 탁지부를 법학 전문학교가 차지하고 그 아래 있던 농상공부와 기로소는 빈 터전만 남아 있지요. 길 건너 시위이대 영문에는 조선보병대가 있고 경무청이 있는데 경시청이라고 별도로 생겼던 곳에는 순사기숙사가 있고 군부는 조선군사령부분실이 되고 법부는 전화교환소 광화문분국이 되고 통신원은 체신국이 되었습니다.
한 번 가서 보고 알려드리면 자세히 할 수도 있지만 과세에 바빠 가보지 않고 생각해서 적으니 부족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혹 틀린 것이나 없나 한 번 가셔서 좌우 쪽을 모조리 조사하여 보시면 좋겠습니다.
조선 초에 경복궁 대궐을 지었을 때 정도전이라는 이가 궁과 궁문과 모든 전각 이름을 지어 바쳤는데 경복궁 이름을 잘 지었다고 칭찬받았던 것이 오늘은 조선총독부가 되었습니다그려.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니 감회가 없을 수 없습니다.
독자 기자란과
제1회 기자 과제
독자가 제목을 낸 것으로 기자가 기사를 쓰는 독자 과제와 기자가 제목을 내 것으로 독자가 기사를 쓰는 기자 과제의 흥미 있는 첫 시험은 이미 발표한 것과 같습니다. 그동안에도 벌써 독자로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들어와서 우선 한 가지는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발표와 같이 제1회 기자 과제를 한 번 발표하니 오는 15일 안으로 상세히 조사해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제1회 기자 과제
1. 100세 장수자 2. 12세 신랑 3. 열 번 이상 살림한 기생
이상 각 문제에 대하여 주소 나이 성명 성격 언행 등 그에 관한 일체 사항은 물론 문벌 지위 재산 친족의 유무와 형편(특히 배우자)이며 일화 애사 세평까지라도 빼지 않고 상세히 기록해 주십시오. 특히 기생 배우자의 살림하던 전후의 사실(예를 들면 가산 탕진의 상태 비관 자살 타락 몰락 혹은 행복 등 일체)을 일일이 적되 인신을 공격하는 것은 절대로 받지 않고 오직 사실 그대로 소개하여야 합니다.
◇게재된 글에 대해서는 상당한 사례를 하고 사진까지 보낼 때는 특히 사진값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