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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선미]가사근로자

입력 | 2021-05-22 03:00:00


가사도우미 없는 한국사회를 떠올리기는 힘들다. 특히 맞벌이 가정에 있어 가사도우미의 도움은 절실하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직업소개소에 전화를 돌려 숱한 면접 끝에 맺어지는 가사도우미와의 인연. 이 만남이 얼마나 잘됐느냐 아니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을 돌봐주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그들이 있기에 그나마 여성들이 밖에 나와 일을 할 수 있다.

▷대개의 가정에서 여성들이 맡던 가사노동은 1967년 정부가 직업안정법에 유료 직업소개소를 허용하면서 공공 서비스가 아닌 민간의 직업소개 방식으로 사회에서 ‘거래’돼 왔다. 시장이 커지면서 가사노동자는 베이비시터, 간병인 등의 직종으로 세분됐지만 주로 가사도우미로 불렸다. 그런데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가사근로자법)이 통과되면서 이들을 부르는 새로운 이름이 생겨났다. ‘가사근로자’다.

▷이 법은 정부 인증을 받은 가사노동 제공기관이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최저임금을 보장하면서 퇴직금, 4대 보험, 유급휴일, 연차 유급휴가 등을 제공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 인증하는 기관이 고용하는 가사도우미에 대해서는 ‘가사근로자’의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가사노동은 68년 만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정식 근로가 됐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당시만 해도 가사노동을 경제행위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가사노동자가 법 적용 범위에서 빠졌던 것 같다”고 했다.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전국의 가사도우미는 청소만 하는 경우는 13만7000명, 육아와 간병 등도 포함하면 30만∼60만 명이다. 제정안은 앞으로 1년 후 시행되는데, 새 법이 시행돼도 기존처럼 직업소개소를 통해 가사도우미를 직접 고용해도 된다. 정부가 인증기관을 통한 가사근로자와 민간을 통한 가사도우미 고용이라는 두 길을 다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소개소를 통한 도우미에 비해 정부가 인증하는 가사근로자가 믿음직한 건 사실이지만 비용이 최대 20% 정도 비싸진다.

▷가사근로자법은 가사서비스와 관련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사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의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가사근로자에게 휴게시간을 주는 등 적절한 근로환경을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용계약서에 정한 사항 이외의 업무는 요구할 수 없다. 돕는 사람들을 귀하게 대하자는 법이다. 남은 1년, 선의의 피해자나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는 빈틈없이 준비해야 한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