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아트로드]울진 금강소나무숲길
금강소나무는 곧다. 가지는 반공중에 덩그마니 날개를 펴고 있다. 사진은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길에 있는 수령 350년의 ‘미인송’.
《계곡물 위에 놓인 돌다리를 이리저리 건너 숲속으로 들어간다. 너삼밭 너머 화전민 마을을 지나고, 보부상이 다니던 길을 걷다 보니 소나무 숲이 나타났다. 마치 대나무 숲처럼 키 큰 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금강송(金剛松)의 바다. 온몸이 굽고 뒤틀린 ‘남산의 소나무’만 보고 살아온 이의 눈에는 20∼30m 높이로 쭉쭉 뻗어 올라간 금강소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수백 년 묵은 소나무에서는 5배 이상 쏟아진다는 피톤치드의 향연!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쉬어 본다. 온 산에 가득한 솔 향의 맑은 기운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와 세포 하나하나까지 스며들었다.》
○ 수백 년 살아 온 명품 소나무를 찾아서
2010년 산림청이 조성한 1호 숲길인 경북 울진군 소광리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이 8일 올해 처음으로 열렸다. 11월 30일까지 개방되는 이 숲길은 총 7개 구간(79.4km)으로 국내 최대 금강소나무 군락지답게 수령 30∼5000년 된 금강송 160여만 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1년에 7개월만 열리고 나머지 5개월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천연기념물 제217호)을 비롯한 희귀 동식물의 천국으로 보호하고 있는 지역이다.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길에 있는 대표적 명품 소나무. 대왕소나무(수령 600년 이상 추정, 높이 14m)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길에 있는 대표적 명품 소나무. 오백년소나무(수령 530년, 높이 25m)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길에 있는 대표적 명품 소나무. ‘못난이 소나무’(수령 530년, 높이 23m)
○ 조선 왕실이 보호하던 금강소나무 숲
한국화가 백범영 교수가 스케치한 울진 금강송숲길의 소나무 그림.
조선 시대에도 금강소나무는 궁궐을 짓거나 임금이나 왕세자의 관(棺)을 만들 때 많이 쓰였기 때문에 왕실에서 특별히 보호했다. 금강송은 백두대간을 따라 금강산, 강릉, 삼척, 울진, 봉화 일대에 분포하는데, 조선 숙종 때부터 금강소나무림을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지정해 관리했다. 소광리의 대광천 상류에 있는 ‘황장봉계표석’에는 일반인이 출입해 벌채를 하면 ‘곤장 100대의 중형에 처한다’고 적혀 있다.
대왕소나무에서 조령성황사로 넘어오는 ‘샛재’ 고개 능선에는 지름이 80∼90cm에 이르는 금강소나무에 노란 페인트칠로 번호를 새겨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숭례문 화재사고와 같이 국가문화재가 불에 타 소실될 경우 대체재로 쓰기 위해 국가에서 따로 관리하는 것이다.
‘샛재’ 고개는 보부상들이 넘던 십이령 고개(울진 8개, 봉화 4개) 중의 하나다. 바지게꾼으로 불리는 그들은 울진에서 해산물을 잔뜩 지고 130리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봉화에서 농산물로 바꿔 다시 울진으로 돌아오는 고된 여로를 숙명처럼 여기고 살았다. 간고등어, 소금 등 80kg가량의 짐을 실은 바지게를 지는 보부상들은 주막집에서도 등짐을 못 내려놓고 짤막한 작대기에 기대 쉬기 때문에 ‘선질꾼’ ‘바지게꾼’이라고 불렸다. 샛재에서 내려가는 길에서 장수봉 해설사는 ‘십이령 바지게꾼의 소리’ 한 대목을 들려주었다. 울음이 터질 듯 보부상의 애환을 담은 그의 목소리가 숲길에 우렁우렁 울려 퍼졌다.
“미역 소금 어물지고 춘양장을 언제가노∼ 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언제가노∼ 가노가노 언제가노 열두고개 언제가노∼”
글·사진 울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여행 정보
예약은 금강소나무 숲길 인터넷 홈페이지 또는 문의전화. 각 구간 하루에 최대 80명까지 예약. 숲해설가의 안내에 따라 코스마다 2∼5시간 정도의 숲길을 걷는다. 각 구간 시작점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한 탐방객들은 점심에 숲길에서 현지 마을 주민들이 마련해 주는 자연식 도시락을 먹는다. 1구간은 ‘찬물내기’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4구간은 ‘대왕소나무’ 아래에서 현지 나물과 밥으로 구성한 자연식 도시락을 먹는다. 1인당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