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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과 70년’ 서울 황학시장을 지키는 사람들

입력 | 2021-05-22 03:00:00

[위클리 리포트]
기계골목 터줏대감의 추억
모터수리 30년 베테랑의 한숨
30대 칼국숫집 사장의 도전



서울 중구 황학동에 있는 황학시장 기계골목. 한 철물상 앞에 수리를 기다리는 낡은 중고 모터가 가득 쌓여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낡아빠져서 고물처럼 보이지? 그래도 요놈의 모터들이 대한민국 공장의 심장이야. 크고 작은 전국 공장에서 쓰임새가 요긴하지. 이거 고치러 오는 거 보면 경기가 어떤지도 다 알아. 요즘? 정말 다들 너무 힘든가 보다 싶지.”

17일 아침부터 추적추적 뿌린 비는 점심 무렵에도 그칠 줄 몰랐다. 다들 우산을 펴들고 걸음을 옮겼지만 뿌연 습기에 살갗은 더욱 끈적거렸다. 서울 중구 황학동 67번지 기계골목에 있는 ‘개원기계’ 간판도 짙은 물기를 머금어 왠지 곰삭아 보였다.

바닥에 튕기며 바짓가랑이를 축축하게 적시는 빗방울. 하지만 개원기계 대표 박종상 씨(76)는 괘념치 않는 듯했다. 쨍 하니 불꽃 튀는 용접 소리가 멈춘 작업장 바깥에 앉아 하염없이 거리를 바라봤다. “옛날 같으면 이 시간에 수리를 맡기는 모터들이 1t 트럭에 가득 실려 들어왔는데….” 박 씨는 괜스레 입맛만 쩝쩝 다셨다.

“여기서 일한 지 30년이 넘었어. 한창 때는 모터를 하루 30, 40개는 가뿐하게 고쳤지. 주위에서 ‘달인’이라 치켜세우기도 했지, 허허. 근데 요샌 정말 손님이 없네. 하루 2, 3개 들어오는 게 고작이야. 작년에 공장이란 공장은 다 망했다더니 진짜 그런가 봐. 왕십리 쪽 형님 동생 하던 공장 사장들도 요샌 코빼기도 보이질 않아.”

‘도깨비시장’ ‘만물시장’ ‘풍물시장’ ‘중고시장’….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황학동이 어떤 곳인지 누구나 다 안다. 6·25전쟁 직후 161번지 일대에 피란민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황학시장은 1960년대 공작기계 상인들이 운집해 종합시장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돈만 내면 중고 탱크도 구할 수 있다”는 말도 이 무렵부터 나왔다.

70년 가까이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발길이 끊이지 않은 황학시장은 그간 세월만큼 부침을 겪었다. 1990년대 용산전자상가에 전자 메카의 명성을 빼앗기고 2000년대 청계천 복원과 재개발 등에도 휘청거렸다. 외환위기와 대형마트 증가, 온라인 거래도 타격이 컸다.

그리고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전대미문의 광풍이었다. 해외관광객은 자취를 감췄고, 폐업 가게에서 쏟아진 물건들만 쌓여 갔다. 수십 년을 이어오던 점포들도 셔터를 내렸다. “전쟁도 이겼는데 그깟 염병(染病) 하나도 안 무서워”라는 한 노부(老夫)의 웃음엔 왠지 모르게 그늘이 끼었다. 이 지겨운 비가 멈추길 기다리는 황학시장으로 나가봤다.

○거리는 의구(依舊)한데 손님은 간 데 없고

“영원까진 아니라도 오랫동안 흥하자는 뜻에서 ‘영흥(永興)’이라 지었지. 가게를 낸 게 1965년 5월경이었으니 만으로 쳐도 딱 56년 됐네.”

기계골목에서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영흥사’의 김수돈 대표(80)는 자주 굵은 손마디를 만지작거렸다. 그는 지금도 처음 황학시장에 자리 잡았을 당시가 눈에 선하다. 청계천 일대는 모래사장이었고 넝마장수와 고물상만 가득했다.

20대 젊은 시절. 없는 돈을 모아 차린 철물상 앞에 서면 굶어도 배고픈 줄 몰랐다. 김 대표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5시마다 직접 고물상들을 뒤졌다. 그렇게 찾은 기계들을 고쳐 판 손은 은퇴한 지 한참인데도 찐한 기름 냄새가 진득이 밴 듯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여긴 밤늦게도 불이 꺼질 줄 몰랐어. 중고 모터 같은 건 의류 공장부터 두부 공장까지 안 쓰이는 데가 없거든. 골목마다 용접과 납땜 소리에 귀가 멍멍해질 정도였지. 근데 IMF(외환위기)가 직격탄이었어. 그때부터 힘이 빠지더니 코로나19는 정말…. 나야 살 만큼 살았고, 벌 만큼 벌었지만 젊은 사람들이 걱정이야.”

을씨년스러운 건 기계골목만이 아니었다. 인근 골동품골목도 사정은 비슷했다. 공장 관계자들이 주로 오가던 기계골목과 달리 젊은이는 물론이고 외국인들도 많이 찾던 거리지만 이젠 거의 발길이 끊겼다고 한다. 한 골동품가게 사장은 “수익 기대는 이미 접었다. 그냥 갈 곳 잃은 물건들 버리긴 아까우니 맡아 주고 있다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다”고 푸념했다.

늘어선 가게를 채운 골동품들은 없는 게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쓰던 것”이라는 그릇부터 우리네 할머니 손때가 묻은 듯한 돌절구, 어느 부잣집 거실을 장식했을 법한 축음기까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중고 레코드가게 ‘돌레코드’를 운영하고 있는 김성종 씨(66)는 “여기엔 모든 세대의 세월이 다 농축돼 있다”고 했다.

“생각해봐요. 다들 황학시장에 올 때 뭘 기대하고 오겠어요. 빠릿빠릿한 신품 보러 오는 게 아니잖아요. 70대 어르신은 남인수 앨범, 60대들은 쎄시봉, 50대는 조용필 것 찾아서 오는 거예요. 30, 40대는 이문세 서태지 레코드를 찾죠. 다 자기만의 청춘을 만나러 오는 겁니다.”

그런 김 씨에 따르면 ‘황학시장의 쇠락’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2000년대 초반 사라진 ‘삼일시민아파트’가 상징적이라고 한다. 1969년 청계천 인근에 세워졌던 시민아파트는 지금으로 치면 잘나가는 주상복합아파트였다. 24개동에 1200가구가 넘고 1·2층은 상가, 3∼7층이 아파트였다. 지금은 주민센터와 공원, 대형아파트 등이 들어서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서서히 기우는 느낌이 있었어요. 함께하던 삶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고나 할까. 그래도 최근 몇 년은 다시 반짝했지. 한류 바람이 불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꽤나 왔거든. 외국 방송에서 촬영을 온 적도 있어. 근데 웬걸. 코로나19로 그 많던 외국인이 싹 사라졌어. 언젠간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지만, 그게 언제쯤일지 누가 알겠어요.”

○사갔던 물건, 폐업해서 되팔고 싶다 호소

19일 날씨가 화창해지자 시장 사람들이 햇볕을 쬐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982년부터 여기서 일했지. 그땐 주방골목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었어. 가게가 겨우 10곳이 될까 말까 했거든. 지금은 정말 없는 게 없지. 가격만 맞으면 뭐든 구할 수 있으니까.”

커다란 철제 싱크대부터 대형 냉장고, 자그마한 국자부터 가스레인지까지. 황학시장 ‘중심가’인 마장로를 따라 늘어선 주방용품 가게는 400여 곳. 지금도 하루 종일 물건을 치우고 닦는 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창성알뜰중고주방’ 직원인 이흥수 씨(63)도 마찬가지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눈과 손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젊은 시절부터 사장과 함께 가게를 지켜온 그는 말 한마디에도 자부심이 그득했다. 이 씨는 “서울에서 밥장사 하려면 황학시장은 꼭 한 번 와야 하는 곳”이라며 “지방 곳곳, 제주에서도 물건 떼러 오곤 했다”고 했다.

하지만 주방골목 상인들의 속내도 여간 타들어가는 게 아니다. 요즘 주변 상인들끼리 ‘코로나’란 단어는 거의 금기어에 가까울 정도다. 42년 동안 영업해 온 ‘코끼리냉면기계’의 김구환 사장(66)도 대뜸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가게 매출이 예년보다 40% 가까이 줄어들었어. 하지만 우리가 문제가 아니야. 요새 제일 많이 받는 전화가 뭔지 알아? 우리 가게에서 기계를 사갔던 사장들한테서 오는 거야. 도저히 장사가 안 돼 폐업할 건데 다시 좀 기계를 사주면 안 되겠느냐고.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비슷한 읍소 전화가 오는데 그때마다 너무 안타까워.”

그나마 버티는 업소들도 반응이 예년 같지 않다고 한다. 원래 5월이면 냉면 대목이 시작되는 시즌이다. 행여 기계가 고장 나면 ‘수리할 동안 쓸 대체 기계를 보내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요즘 수리를 신청하는 가게들은 ‘어차피 손님도 없다. 그냥 고장 난 김에 며칠 쉬기로 했다’고 한단다. 김 사장은 “한창 장사 잘될 때는 가게 앞에 차들이 엉켜 매일 주차 문제로 싸웠는데, 이젠 그런 풍경을 보기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길고 긴 비도 언젠간 그칠 테니까

황학시장을 찾은 고객들이 중고가전제품 전문 상점에서 제품들을 살펴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코로나 1년 동안 황학시장은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오가는 사람은 줄고, 상인들 얼굴엔 주름만 깊어졌다. 휑해진 경기를 버티다 못해 문을 닫은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상인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눈빛엔 황학시장이 이렇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당당함도 엿보였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꽈배기를 튀겼다는 한 할머니는 “원래 삶이란 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아니겠느냐”며 “버티면 좋은 날이 꼭 오는 게 세상 이치”라며 기자 손에 꽈배기를 쥐여줬다.

‘할아버지손칼국수’를 운영하는 강민철 씨(39)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시작한 장사는 1980년대 후반 가게 터를 잡은 뒤 아버지에 이어 손자인 자신이 대를 잇고 있다. 일곱 살 때부터 할아버지 손을 잡고 황학시장을 드나들었던 강 씨에게 이곳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이 담겨 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이 골목은 언제나 ‘소리’로 가득했어요. 철물 자르는 프레스, 덜덜 돌아가는 중고 세탁기, 손님 붙잡고 흥정하는 상인들의 목청…. 아이라면 혼이 쏙 빠질 법도 하지만 그게 좋았거든요. 근데 어른이 돼서 오랜만에 할아버지 가게를 왔다가 깜짝 놀랐죠. 내가 알던 황학시장이 아닌 거예요. 뭔가 확 쪼그라든 느낌이랄까. 그때였어요. ‘내가 꼭 할아버지가 일군 터전을 살려 내겠다’고 다짐했죠.”

물론 이미 기울어진 시장 분위기를 강 씨 혼자 살리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럴수록 더 힘을 냈다.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홍두깨 빼고는” 모두 바꿨단다. 육수와 반죽도 신기술을 도입하고 다진 양념까지 요즘 입맛에 맞춰 업그레이드했다. 몇 년 동안 고생했더니 이젠 단골도 꽤나 늘었다.

“당연히 코로나19로 힘들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더니 조금씩 손님들이 다시 돌아왔어요. 이전 매출도 거의 회복했거든요. 코로나19 역시 언젠간 끝나지 않겠어요? 이 위기를 이겨내면 우리 시장도 다시 생기를 찾을 겁니다.”

오후 무렵, 황학시장은 여전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래도 빗줄기는 몰라볼 만큼 가늘어졌다. 그래서일까. 텅 빈 것 같던 골목골목에 두세 명씩 시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2년 전 카페 창업 때 처음 황학시장에 왔다는 김근미 씨(33). 남동생과 스튜디오 창업에 필요한 물품을 둘러보러 다시 이곳을 찾아왔다고 한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직접 보는 것 하곤 다르거든요. 괜히 황학동이겠어요. 특히 업소를 장식할 소품들은 여기만큼 빈티지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인 곳을 찾기 힘들어요. 코로나19로 상황이 안 좋긴 하지만 조만간 다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겁니다. 저도 새로운 출발을 위해 평소 좋아하던 샹송 중고 LP 2장을 스스로에게 선물했어요. 왠지 여기서 이렇게 기운 받고 가면 우리 창업도 성공하겠죠?”

김수현 newsoo@donga.com·김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