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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비키니] 롯데 자이언츠 감독 교체, 단장 야구의 승리?

입력 | 2021-05-22 13:15:00

야구는 ‘선수의 경기’…MLB에선 감독보다 단장이 영향 커

● 선수 기용 감독의 신성불가침 영역 아냐
● 메이저리그에선 감독보다 단장 역할 커
● 롯데, 단장 vs 감독 내분으로 ‘勝소수자’ 등극
● 내분 다스리지 않으면 성적 향상 어려워




성민규 롯데 자이언츠 단장(왼쪽)과 5월 11일 경질된 허문회 롯데 자이언츠 전 감독. [동아DB, 롯데자이언츠 제공]

“남자로 태어났으니 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 연합함대 사령관,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리고 프로야구 감독이다.”

야구팬에게 너무도 친숙한 이 표현을 남긴 건 미즈노 시게오(水野成夫·1899~1972) 당시 일본 후지산케이그룹 회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미즈노 회장이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연합함대 사령관, 프로야구 감독을 이렇게 동경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일단 여기서 연합함대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 제국 해군을 뜻합니다. 당연히 미국인에게 이 함대 사령관(정확하게는 사령장관)은 적장에 해당하는 존재.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 표현을 번역하면서 연합함대 사령관을 ‘항공모함 함장’ 등으로 바꾸곤 합니다.

또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프로야구 감독보다는 단장을 꿈꿨을지 모릅니다. 그가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확실히 그럴지 모릅니다. 방송사(후지테레비)와 신문사(산케이신문)를 거느린 ‘언론 재벌’이었던 미즈노 회장은 1965년 ‘고쿠테츠(國鐵) 스왈로즈’를 인수하면서 프로야구 팀 구단주가 됐습니다. 팀을 인수한 뒤 그는 후지테레비에서 방영하던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에서 따와 팀 이름을 ‘산케이 아톰즈’라고 바꿨습니다. (현재 이 팀은 야쿠르트 스왈로즈입니다.)

미국에는 언론사 사주이자 메이저리그(MLB) 팀 구단주이면서 감독까지 맡았던 인물이 있습니다. 테드 터너(83) CNN 회장이 주인공. 197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인수한 터너 회장은 이듬해 팀이 16연패에 빠지자 데이브 브리스톨(88) 감독에게 열흘 동안 휴가를 주고 자신이 감독을 맡기로 했습니다.

프로야구단 단장, MLB선 ‘비즈니스 매니저’
터너 회장은 감독 데뷔전에서 1-2로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는 다음 경기에서는 반드시 이기겠다고 열의를 불태웠지만 MLB 사무국은 ‘코칭 스태프는 구단 지분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근거로 제동을 걸었습니다. 터너 회장이 계속 감독 자리를 지키려면 구단 지분을 내놓아야 했던 겁니다. 물론 터너 회장은 지분을 지키는 대신 감독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MLB 초창기에는 이런 규정이 없었습니다. 그 덕에 필라델피아(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공동 구단주였던 코니 맥(1862~1956) 감독은 1901년부터 50년 동안 이 팀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야구는 다른 종목과 달리 감독도 선수와 똑같이 유니폼을 입는 게 일반적이지만 맥은 당시 정장 차림으로 더그아웃을 지켰습니다. 구단주니까요.

1901년 팀 창단 당시 구단 지분 25%를 소유하고 있던 맥 감독은 1913년 지분 25%를 추가로 매입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포츠용품 생산업자 벤 쉬브(1838~1922)와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가지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맥 감독이 야구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대신 쉬브는 비즈니스 문제를 책임지기로 뜻을 모으게 됩니다. 메이저리그에 ‘비즈니스 매니저(Business Manager)’라는 직함이 등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메이저리그선 감독보다 단장 영향력 커

메이저리그 단장 시대를 연 애드 배로 전 뉴욕양키스 단장. [동아DB]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애드 배로(1868~1953)는 감독에서 비즈니스 매니저로 직업을 바꾸게 됩니다. 배로는 감독 부임 첫해이던 1918년 보스턴 레드삭스를 월드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사업 빚에 시달리던 구단주는 선수들을 내다 팔기 바빴습니다. 1920년 시즌을 앞두고는 기어이 팀 내 최고 스타 베이브 루스(1895~1948)마저 뉴욕 양키스로 보내고 맙니다. 이에 신물이 난 배로 감독은 1920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내놓고 양키스 비즈니스 매니저로 자리를 옮기기로 합니다.

배로는 극장 사업으로 돈을 번 뒤 마이너리그 팀을 인수해 직접 감독을 맡으면서 야구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원래 야구 선수 출신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데도 왼손 투수로 승승장구하던 루스에게 타자 전향을 권유해 세계적인 홈런왕으로 만들 만큼 선수 보는 눈도 뛰어났습니다.

배로는 비즈니스 매니저로 취임하면서 제이콥 루퍼트(1867~1939) 당시 양키스 구단주에게 선수단 구성 권한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밀러 허긴스(1878~1929) 감독에게 “당신 일은 이기는 것이고, 내 일은 당신이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선수를 구해 오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비즈니스 매니저가 ‘제너럴 매니저(General Manager)’ 그러니까 ‘단장’으로 진화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이 전무하던 양키스는 배로 단장 재임 시절(1920~1945) 총 10번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하면서 ‘왕조’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이로부터 100년이 지난 현재 MLB에서 ‘야구는 단장의 게임’이라는 명제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장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이들 가운데는 ‘야구 운영 부문 사장(President of baseball operations)’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몸값도 비쌉니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앤드루 프리드먼(45)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 사장은 1000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습니다. 보스턴(86년)과 시카고 컵스(108년)의 우승 가뭄을 해소하고 물러난 테오 엡스타인(48) 전 컵스 사장도 100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감독 몸값은 이보다 적습니다. 보스턴이 2004년 ‘밤비노의 저주’를 깨드릴 때 팀을 이끈 테리 프랑코나(62) 감독은 올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연봉으로 420만 달러를 받습니다. 현역 MLB 감독 가운데 몸값이 가장 비싼 인물이 프랑코나 감독입니다. 2016년 컵스에서 ‘염소의 저주’를 무너뜨린 조 매든(67) 현 LA 에인절스 감독이 400만 달러로 그다음입니다.

KBO선 선수 기용 감독의 고유 권한?
컵스가 월드시리즈 정상을 향해 가는 과정을 다룬 책 ‘더 컵스 웨이(The Cubs Way)’에는 매든 감독이 선발 라인업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소개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매든 감독은 매일 아침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 지표를 활용해 선발 라인업을 짭니다. 그러고 나서 엡스타인 당시 사장, 구단 홍보 담당자 그리고 1루 코치에게 e메일로 전달합니다. 그러면 엡스타인 사장이 자기 의견을 담아 답장을 보낼 때도 있고, 이 의견에 따라 매든 감독이 라인업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감독의 선수 기용 권한이 신성불가침하다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2003, 2004년 한화 이글스 감독을 지낸 유승안(65)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은 자기 페이스북에 “도대체 누구에게 프로야구 감독의 선수 기용을 놓고 콩 놔라, 팥 놔라 할 자격이 있느냐”면서 “비시즌에 선수단 구성을 잘해서 감독을 포함한 선수단에 잘 넘겨주고 시즌이 흘러가면서 부족한 구멍을 트레이드로 메워주는 것이 단장이나 구단의 할 일”이라고 썼습니다.

유 회장은 성민규(39) 단장과 허문회(49) 전 감독 사이에 불화설이 불거진 롯데 자이언츠를 겨냥한 듯 “벌써 몇 경기나 했다고 선수 기용을 문제 삼아 감독에게 직접 말하는 것도 아니고 팬들 앞에서 시빗거리를 만드는 걸 보면 그쪽 팀 올해도 틀렸나 보다”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현재 삭제 상태입니다.)

롯데 자이언츠 내분으로 패전 일색
롯데는 2019년 전반기를 최하위로 마감한 뒤 그해 7월 19일 이윤원(54) 단장과 양상문(60) 감독이 동시에 물러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뒤 감독보다 먼저 컵스 프런트 출신인 성 단장을 선임했습니다. 형식적으로 경영진에서 단장을 선임하면 단장이 감독을 선임하는 MLB 모델을 따른 겁니다. 성 단장은 지난해 시즌 개막을 앞두고 “스토브리그 때 제일 영입을 잘한 대상은 누군인가. 나는 허문회 감독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 단장이 아니라 구단 수뇌부가 허 감독을 선임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선임 과정이야 어쨌든 두 사람은 힘을 모을 수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파열음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롯데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LGBT(Lotte Giants Baseball Team)는 다시 ‘승(勝)소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롯데는 2019년 7월 이 단장과 양 감독 사퇴 소식을 전하면서 “감독과 단장의 동반 사임은 앞으로는 더는 있어서는 안 될 매우 불행한 일이다. 대오각성의 기회로 삼겠다”는 문장으로 보도자료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로부터 1년 10개월이 지났지만 현재 롯데가 대오각성했다고 믿는 팬은 아무도 없습니다. 롯데 수뇌부가 정말 대오각성했다면 처음부터 두 시즌도 못 채우고 떠날 감독을 선임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미국에서도 종목 특성에 따라 단장과 감독 관계가 다릅니다. 미국프로농구(NBA) 팀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단장이 아니라 그렉 포포비치(72) 감독에게 사장 자리를 맡기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감독 > 단장’ 구도가 됩니다.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는 아예 단장 자리가 없습니다. 대신 빌 벨리칙(69) 감독이 사실상 단장 노릇을 합니다. NFL에는 이렇게 별도 단장이 없는 팀이 적지 않습니다.

통계는 감독보다 단장의 손을 들어준다
그렇다면 MLB는 왜 감독보다 단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을까요? 150년 역사를 지나오면서 ‘야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가 하는 종목’이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수 그리고 팀 미래에 감독보다 단장이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농구나 미식축구 감독을 헤드 코치(head coach)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야구 감독을 매니저(manager)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차이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다시 터너 구단주 이야기. 아무리 팀이 연패에 빠졌다고 해도 구단주가 직접 감독을 맡기로 마음 먹기는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은 야구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 내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그저 어른들이 뛰는 리틀리그 팀”이라면서 “1100만 달러를 모아 MLB 팀을 살 수 있을 만큼 똑똑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팀 감독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터너 회장은 딱 한 경기에서만 지휘봉을 잡았기 때문에 저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 채 야구계를 떠나야 했습니다.

터너 회장이 감독을 맡았던 경기에 애틀랜타 유격수 겸 1번 타자로 출장한 선수는 나중에 롯데 감독이 되는 제리 로이스터(69)였습니다. 로이스터 감독이 비밀번호 같은 ‘8888577’ 순위에서 롯데를 구원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뛰어난 ‘매니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구단에서는 로이스터 감독이 ‘헤드 코치’ 노릇을 잘 못 한다며 세 시즌 만에 그를 쫓아냈습니다.

이후 11년간 롯데는 감독 6명을 갈아치워야 했습니다. 누구는 매니저로서 함량 미달이었고 또 누구는 헤드 코치로서 실격이라는 이유가 뒤따랐습니다. 이 정도면 감독이 아니라 ‘감독을 고르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구단주는 ‘1000만 달러를 받을 만큼 똑똑한 사람’에게 감독 선임권을 넘기기로 한 겁니다. ‘자이언츠 시빌 워(내전)’에서 성 단장이 승리한 2021년 5월 11일은 진짜 ‘단장 야구’를 시작한 첫날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겁니다.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