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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오름의 최대 농경지 ‘하논’… 논바닥에 환경정보 많아 연구 활발

입력 | 2021-05-24 03:00:00

제주의 ‘오름이야기’ <6> 농경지




21일 제주 서귀포시 하논. 오름 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분화구는 마치 거대한 원형 경기장을 연상시켰다. 2002년 당시 무산됐지만 야구 전지훈련장으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이유를 알 만했다. 분화구 바닥은 제주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은 논이고, 경사면에는 귤과수원이 조성됐다. 분화구 동북쪽에는 ‘몰망소’로 불리는 샘에서 용천수가 계속 올라왔다. 한라산에 내린 빗물이 지하 암반층을 타고 내려오다 분화구에서 솟아난 것이다. 이 물을 이용해 벼농사를 짓고 있다. 하논은 농경지로 쓰이고 있는 대표적인 오름이다.

하논은 오름 직경이 1200m에 달하고, 분화구 바닥 직경이 800m가량이다. 제주지역 최대 규모 화산분화구다. 분석구(스코리아콘)로 구성된 대부분 오름과 달리 하논은 마그마가 물을 만나 격렬한 폭발을 일으키면서 화산쇄설물이 퇴적하는 수성화산활동 과정을 밟은 응회환이다. 분화구 중심부가 지표면보다 30m가량 낮은 마르(maar)형 화산체로 분류된다. 특히 논바닥은 거대한 습지퇴적층으로 제주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지역 과거 식생과 기후변화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환경정보를 간직하는 ‘타임캡슐’로 연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 오름 농경지 시초인 하논


제주 서귀포시 하논은 국내 최대 규모 마르형 분화구로 오름 가운데 처음으로 벼와 귤 농사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분화구 사면은 방풍에 적당하고, 바닥은 퇴적층과 용천수가 있어서 농사가 가능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여러 비밀을 간직한 하논은 제주지역에서 드물게 벼농사가 이뤄진 곳이다. 화산섬인 제주의 땅은 투수율이 높은 탓에 물을 담아두기 힘든 악조건 등으로 인해 벼농사를 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하지만 하논은 퇴적층과 더불어 용천수가 나오기 때문에 논 조성이 가능했다.

하논에 논이 들어선 것은 1400년대로 추정된다. 1454년 발간된 세종실록지리지 제주목 대정현편에 ‘수전(水田) 80결’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논을 뜻하는 수전에 하논이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

하논의 원래 모습은 물을 가둬 둔 호수 형태로 추정된다. 이원진(1594∼1665)이 1653년 발간한 탐라지에 ‘예전에 동쪽 가장자리를 뚫어 물을 빼서 논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추정의 근거다. 동쪽사면을 허물어 물을 빼내 천지연폭포로 흐르는 하천과 연결시킨 뒤 농지를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1486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유수전수십경 명대지(有水田數十頃 名大池·논 수십 경이 있는데 대지라고 부른다)’라고 했고 1702년 제작된 ‘탐라순력도’에는 하논을 ‘대답(大畓)’으로 표시하는 등 ‘넓고 큰 논’을 뜻하는 지명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하논 논 면적은 8만 m² 규모로 이종근 씨(68)가 벼농사를 하고 있다. 이 씨는 “1997년경 우연히 제주에 왔다가 땅을 놀리는 것을 보고 빌렸다”며 “수확한 벼는 하논에 있는 정미소에서 도정을 하고 나서 정부미나 주조회사, 개인에게 팔고 있다”고 말했다. 논 필지가 작은 면적으로 쪼개지면서 소유주가 71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연간 생산량은 100t 정도다.

하논 경사면은 대부분 귤과수원으로 조성됐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인이 귤 농사를 한 것이 시초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과거 제주지역에서 재배된 토종 귤과는 다른 품종이었다. 제주지역 토종 귤은 고려시대부터 진상품이자 특산품으로 유명했고 조선시대에는 조정이 관리하는 귤 과원이 30개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다. 귤 종류도 산귤, 청귤, 금귤, 탱자, 유자 등 13개 품종에 달했다.

갑오개혁으로 진상제도가 중단되면서 귤 재배가 사라졌다. 당시 주민들은 진상할 귤을 재배하고 확보하느라 상당한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토종 귤이 사라지는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새로운 귤 품종을 들여와 하논 서쪽 경사면 4곳 5000m²에서 재배하다 광복 이후인 1948년 경매를 통해 지역 주민에게 돌아갔다. 고창수 씨(69)는 “아버지가 생전에 경매로 과수원을 샀는데, 처음으로 일본 온주 귤 품종을 대량 재배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을 막을 수 있어서 하논에 과수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동·서부는 밭작물, 남부는 귤 과수원으로 조성


귤이 높은 가격으로 팔려나가자 귤 과수원이 하논에 잇따라 생겼으며 1968년 귤 증식사업이 정부의 농어촌소득증대특별사업에 포함되면서 귤 재배는 제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귤나무로 ‘자식 대학 공부를 시켰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대학나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평지는 물론이고 서귀포 남부지역 예촌망, 영천악, 동걸세, 서걸세 등의 오름에 귤 과수원이 들어선 시기도 이때부터다.

남부지역 오름에 귤 과수원이 조성된 데 비해 동부와 서부지역 오름에는 밭농사에 쓰일 농지가 조성됐다. 제주시 한경면 당산봉은 말굽형(또는 U형) 분화구에 밭이 들어섰다. 보리 재배에 이어 옥수수, 콜라비, 비트 등이 뿌리를 내리고 한창 자라고 있다. 김경돈 용수리 이장은 “아버지 세대 이전부터 분화구에서 농사를 했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며 “태풍이나 폭우 등의 피해를 피할 수 있는 입지여서 그런지 과거에는 상당히 귀한 땅으로 대접받았다”고 말했다.

서귀포시 대정읍 녹남봉과 성산읍 말미오름은 원형 분화구에 밭이 만들어졌다. 원형 분화구는 농기계 운용이나 출입 등이 힘들지만 한 뼘의 농지라도 더 확보하려는 농부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높이가 다소 낮은 언덕 형태의 설오름, 걸리오름, 보롬이오름 등은 농경지로 조성되면서 오름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처럼 오름 분화구나 사면 등에 농경지가 조성된 것은 70여 개로 대부분 해발 200m 이내 마을 인근 오름이다.

화산회토로 이뤄진 제주지역은 과거부터 농사짓기가 힘들었다. 조그만 파도 돌멩이가 부지기수로 나왔고 바람에 흙이 날려가는 등 농작물을 키우는 데 부적합했다. 1846년부터 1884년까지 제주목사가 올린 장계를 기록한 ‘제주계록’에 따르면 흉년이 들면 제주사람의 94%가 관가에서 곡식을 빌려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다 농사용 도구의 기계화가 이뤄지고, 화학비료가 나오면서 제주지역 농사는 비약적인 도약을 한다.

허종민 제주도농업기술원 기술지원국장은 “1980년에 들어 10a당 맥주보리, 벼 생산량이 전국 평균을 웃돌았고 재배 작물은 유채, 양파, 양배추, 마늘, 당근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오름에까지 농경지 조성이 이뤄졌다”며 “농업기술의 발달로 오름에서 농사짓기가 수월해졌지만 땅이나 기후 특성에 맞는 작물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