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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은우]디지털 협력과 경쟁

입력 | 2021-05-24 03:00:00


신한은행이 음식 주문 배달 앱 개발에 나섰다. 배달 앱 플랫폼을 만드는 데 140억 원을 쓸 작정이다. ‘배달의 민족’ 같은 전문업체의 개발비를 훌쩍 뛰어넘는다. 은행이 웬 음식 배달일까. 기존 고객만으론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배달 앱 플랫폼에 들어올 음식점 주인과 라이더, 소비자까지 은행의 잠재 고객이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가상공간 플랫폼에는 무한정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 이곳을 놓고 전통 금융사와 빅테크, 핀테크 기업들이 금융 협쟁(Co-opetition·협력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15년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할 때만 해도 대형 은행들은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자본력과 경험에서 우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분 투자로 인터넷은행들에 살짝 발만 걸쳐 놓았다. 하지만 몇 년 새 카카오뱅크는 고객 1600만 명을 모았다.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을 가진 덕분이다. 장외시장에서 카카오뱅크의 시가총액은 대형 금융사 두 곳을 합친 규모다. 핀테크 스타트업 토스도 1800만 회원을 거느린 플랫폼의 힘으로 ‘디지털 금융 지주사’가 됐다.

▷빅테크에 맞서 기존 금융사들은 일단 단합에 나섰다. 국내 8개 카드사는 간편결제 플랫폼을 서로 개방하기로 했다. KB페이 앱에서 현대카드를, 신한페이 앱에서 삼성카드를 결제하는 식이다. 이런 연합으로 지급결제 시장의 절반을 장악한 카카오·네이버 페이에 대항하고 있다. 자사 플랫폼의 덩치 키우기에도 나섰다. KB금융은 계열 은행과 보험, 증권 등을 한데 묶은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생활금융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경쟁자는 동업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은행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사업자를 대상으로 대출 상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미래에셋은 네이버파이낸셜과 손잡고 곧 개인 신용대출 상품을 내놓는다. 은행과 인공지능(AI) 기업이 연합하면 ‘AI뱅커’도 만들 수 있다. 가상의 은행원인 AI뱅커가 투자 상담까지 해준다. 디지털 시대에 금융과 정보기술(IT)의 경계는 없다. 스페인 금융그룹인 BBVA의 프란시스코 곤살레스 전 회장은 “우리는 미래에 소프트웨어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개발은행은 요즘 최고의 디지털은행으로 손꼽힌다. 400개 이상의 기업과 손잡고 생활밀착형 플랫폼을 구축한 덕분이다. 은행 플랫폼에서 음식 주문과 배달부터 자동차, 부동산, 게임, 헬스케어까지 해결하는 시대가 됐다. 전문가들은 금융권의 빅뱅과 몰락, 전환이 5년 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승패의 관건은 협쟁이다. 그 과정에서 편리해질 소비자로선 나쁠 게 없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