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중재국의 인권 이중잣대 정략적 접근, 갈등 해결과는 거리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그러나 이 강대국들은 인권이라는 명분 뒤에선 정략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속내를 훤히 드러냈다. 미국은 사태 초반 대응에 미온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무력충돌 사태를 두고 유엔 안보리가 네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이사국 15곳 중 미국이 반대해 단 한 차례도 공동성명조차 내지 못했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 이후 중동 석유에 의존하는 에너지 전략에서 탈피하고 중동서 미군도 줄여 나가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중동서 자국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군을 이용한 직접 개입 전략을 자주 써왔는데, 앞으로 이스라엘을 통한 간접 개입 비중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동서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는 이스라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미국이 압박 수위를 조절하고, 가자지구 공습도 얼마간 용인한다는 눈총을 받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당서 비판이 나오자 사태 8일째 들어서야 양측 ‘휴전’을 처음 거론했다.
중재안을 만든 프랑스도 이번 사태 해결이 자국 이익과 관련이 있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만화를 2006년 게재해 논란이 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문제의 만화를 지난해 9월 재게재했는데 이를 두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라고 말했다가 이슬람 세계에선 비호감으로 낙인찍혔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확산됐는데 프랑스 내 무슬림들이 결집하고 반정부 시위로 번질 가능성도 있었다.
이집트도 중재 상황을 자국 이익에 활용했다.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2013년 7월 국방장관 시절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는데, 정권 비판에 가혹해 정치범만 2만∼6만 명으로 추산된다. 인권을 중시한다는 바이든 행정부 기준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나 터키처럼 비판을 받아야 하는 나라다. 그러나 이집트는 중재 카드를 통해 정권 정통성을 재차 인정받는 한편 미국의 신뢰도 챙겼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자국 이익을 중심으로 지원과 침묵을 반복하는 주변국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중재국들이 지역 내 위상 확대라는 선물을 안고 돌아갔을 뿐, 이번에도 본질적인 갈등 해결에 있어서는 결국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