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 남중국해,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4개국 협의체), 인도태평양 등 중국 견제 내용이 담긴 한미 공동성명에 대해 중국 정부가 24일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고 나섰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지 말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한국과 미국에 경고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두고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문재인 정부의 외교 무게추가 미국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회담 직후 한중 간 불협화음이 노출된 것.
우리 정부는 대만 문제를 성명에 포함한 이유가 우리 국익과 직결되기 때문이고 일반적인 표현으로 절제해 중국을 배려했다는 입장이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중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중국이 발끈하면서 ‘차이나 리스크’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한국 외교의 시험대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中 “한미관계 발전, 중국 이익 해치면 안돼”
자오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미가 대만, 남중국해, 쿼드, 인도태평양, 국제질서 위협 반대 등을 성명에 포함시켰다고 일일이 거론했다. 그러면서 “한미관계 발전은 지역 평화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돼야지 반대로 가면 안되고, 중국을 포함한 제3자의 이익을 해치면 안 된다”고 비난했다. “하나 또는 몇 개 나라가 일방적으로 국제질서를 정의할 자격은 없고 자기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할 자격은 더더욱 없다”고도 했다.
앞서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도 이날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100년과 중국의 발전’ 세미나에서 본보 등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온 힘을 동원해 중국을 억압하거나 탄압하고 있다”며 “한국이 미국과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한국의 자주적인 일이지만 중국의 이익이나 세계 평화, 지역 평화를 해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만 문제는 중국 내정이고 남중국해는 지금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도 했다.
특히 싱 대사는 한미 정상이 합의한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에 대해 “중국의 국익을 해치는 것에 대해 우리가 가만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로 우리 군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제한이 사라지면 베이징 등 중국 본토까지 겨냥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이 중국을 사정권으로 하는 미사일을 개발하면 대응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대만이 자국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중국은 그동안 한국이 일본과 달리 대만, 남중국해 문제 등을 거론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균형외교를 잘하고 있다”고 해왔다. 특히 미중 갈등 속에서 문재인 정부를 미국 동맹 체체로부터 떼어낼 수 있는 ‘약한 고리’로 보고 한중 협력을 강조해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간 첫 통화 직전 먼저 자신과 통화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으로 같은 맥락이다.
●진화나선 靑 “중국과 긴밀히 소통”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 때 “중국”을 명시하면서 대만, 남중국해, 홍콩, 신장위구르 문제 등을 거론하자 중국이 거칠게 항의한 데 비하면 중국의 이번 반발 수위는 낮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중국과의 신뢰 관계를 강조하면서 중국의 반발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때와 같은 강도 높은 보복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대만 문제 언급은 중국으로서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면서도 “여전히 한국은 일본과 다르다고 보고 있고 한국과 첨단기술 등 협력 필요성 때문에 갈등을 더 키울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효목기자 tree624@donga.com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