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맥판막 협착증
동아일보DB
홍은심 기자
그렇다 보니 심장 질환은 지난 5년 연속 암에 이어 국내 사망 원인 2위를 차지했다. 뇌졸중, 당뇨병보다 높은 순위다. ‘심장 질환’ 하면 흔히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을 주로 떠올리지만 심장의 방과 방 사이 문 역할을 하는 판막에 문제가 생기는 심장 판막 질환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판막은 심장에서 혈액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혈액이 순방향으로 흐르지 못하고 역류하거나 한 번에 흐르는 혈액의 양과 속도가 급격하게 감소하면 판막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심장에 존재하는 4개의 판막 중 흔히 임상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위는 심장에서 산소를 머금은 피를 온몸으로 내보내는 대동맥판막이다. 대동맥판막이 점차 섬유화 되고 칼슘이 침착되면서 두꺼워지고 딱딱해지는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전체 심장 판막 질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10년 전 4600명에 불과했던 국내 환자 수가 2020년에는 1만6537명으로 불과 10년 만에 4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요즘은 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퇴행성 판막 질환이 점차 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신체의 여러 장기도 함께 늙어가듯이 심장 판막 역시 평생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면서 노화되기 때문이다. 실제 전 세계 80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은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다. 국내에서도 70세 이상 환자가 전체 환자의 70%를 차지한다.
중증의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면 2년 내 사망률이 50%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다. 폐암, 유방암, 전립선암 등 국내 호발암보다 5년 생존율이 현저히 낮아 예후가 좋지 않다. 그러나 조기에 발견해 꾸준히 관리하고 치료를 받으면 환자의 10년 생존율이 62%까지 높아지기 때문에 빠른 인식과 진단이 성공적 치료에 결정적이다.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들은 주로 가슴 통증, 호흡곤란, 실신, 피로감, 무기력감, 부종 등의 증상을 보인다. 그러나 많은 환자들이 이를 노화나 다른 질환과 혼동하기도 한다. 특히 가슴 통증, 호흡곤란, 부종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협심증, 심근경색 등 심혈관 질환이나 기흉, 흉막염 등 폐 질환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슴이 조임 △갑갑하고 숨이 참 △갑자기 쓰러짐 △쉽게 피로해짐 △기운이 없고 어지러움 △발등과 발목의 부종 등의 증상은 심장 판막이 보내는 위험 신호일 수 있어 반드시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
증상만으로 대동맥판막 협착증을 인지하기 어려우나 청진이나 심초음파 검진을 통해 비교적 쉽게 진단되기 때문에 의료진의 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자각 증상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면서 심장 판막 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만큼 노인들은 심초음파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현재까지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치료 약물이 없어 노후화된 판막을 인공 판막으로 교체하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환자의 상태, 질환의 진행 경과 등을 고려해 개흉수술이나 타비 시술 중 하나를 시행한다. ‘수술적 대동맥판막 치환술’은 가슴을 열어 심장을 멈추고 판막을 교체하는 방법이다.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은 대퇴동맥을 통해 카테터를 넣어 기존 대동맥판막 부위에 인공 심장 판막을 삽입하는 방법이다. 가슴을 열지 않고 최소 침습적으로 이뤄지는 타비 시술은 시술시간과 회복기간이 짧고 환자가 느끼는 통증도 개흉수술에 비해 현저히 작다. 비교적 최근에 도입됐지만 전통적으로 시행되던 수술과 비교해 동등하거나 우수한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면서 시술 사례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