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어제 대통령 방미 성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와 우리 정부가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한반도 비핵화가 1992년 남북 간에 비핵화선언을 했을 때부터 사용했던 용어이고 2018년 (남북)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분명하게 설정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장관 발언은 그가 과연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지대화’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부터 의심케 한다. 북한이 주장해온 비핵지대화는 핵무기의 시험·생산·보유·배치 등을 금지하는 비핵화를 넘어 한미동맹의 대북 억지력을 무력화하는 내용이다. 북한은 비핵지대화를 내세워 핵무기 적재가 가능한 비행기·함선의 한반도 전개 금지와 핵우산 제공의 금지, 핵무기·장비를 동원하거나 핵전쟁을 가상한 군사연습의 중지, 나아가 주한미군의 철수까지 요구했다.
이렇듯 그 차이가 매우 큰데도 그걸 몰랐다면 외교 수장으로서 자질 부족을 드러낸 것이며, 알고도 그랬다면 그 진의에 근본적인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간 정부는 “한국에는 핵무기가 없으므로 한반도 비핵화가 곧 북한 비핵화”라는 논리를 펴왔다. 그런데 여기에 ‘한반도 비핵화’는 ‘조선반도 비핵지대화’와도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면 그간 북한이 요구했던 사안들을 대거 철회라도 했다는 얘기인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비핵지대화는 특정지역 내에서 국가 간 조약에 의해 핵무기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으로 관련국들의 안전보장까지 확보하는 비핵화 방안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한반도는 비핵지대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것은 북한의 주장과는 달라도 크게 다를 것이다. 정 장관은 자신의 발언을 분명히 해명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