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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은우]문 닫는 힐튼호텔

입력 | 2021-05-26 03:00:00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그룹 회장이던 1998년 한국을 찾았다. 자신의 이름을 딴 ‘대우트럼프월드’ 사업 때문이었다. 그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만난 곳은 서울 힐튼호텔 23·24층 ‘김우중 펜트하우스’였다. 남산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트럼프의 맨해튼 펜트하우스 못지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곳이 문을 닫을 처지라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과 일본 고객이 줄면서 호텔 경영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밀레니엄 힐튼 서울’ 대주주인 싱가포르계 CDL코리아로부터 호텔 인수를 앞두고 있다. 이지스는 약 1조 원에 인수한 뒤 호텔을 헐고 오피스빌딩을 지을 예정이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호텔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집합제한 탓에 예식 등 부대사업도 어려워졌다고 한다. 대우그룹은 1983년 호텔을 완공했는데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CDL에 매각했다. 당시 매각 대금은 2600억 원이었다.

▷서울 강남의 첫 특급호텔인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은 올해 초 문을 닫았다. 르메르디앙 서울 호텔도 영업을 중단했다. 코로나로 지난해 매출액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영업 중인 호텔들도 상당수 매물로 나와 있다고 한다. 인수를 저울질하는 업체들은 정작 호텔에는 관심이 없다. 팔래스 강남이나 르메르디앙은 주상복합 등 주거 시설로 바뀔 예정이라고 한다. 집값이 폭등했으니, 집을 지어 파는 게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특히 아파트 시세가 3.3m²당 1억 원에 육박하는 서울 강남권에서는 호텔 매각이 어렵지 않다고 한다.

▷길게 보고 호텔을 키우는 곳도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 자회사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어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옛 르네상스 호텔 자리에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럭셔리 컬렉션 호텔’을 개장했다. 국내외 예술 작품 400점을 전시한 최고급 호텔이다. 주요 호텔들이 문을 닫으면서 특급 호텔의 피트니스센터나 식당 수요는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세계 맞수인 롯데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자사 호텔의 최상위 브랜드인 시그니엘을 베트남으로 가져가 ‘시그니엘 하노이’ 오픈을 앞두고 있다.

▷호텔 문을 닫거나 오히려 확장하는 방안 가운데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맞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런 변신 노력과 코로나 이후 기대감이 맞물려 일부 호텔 관련 주가는 올 들어 오름세를 타고 있다. 남산의 힐튼호텔도 사라지는 건 아쉽지만, 새 오피스빌딩으로 변신해 많은 성공 스토리가 나오길 기대한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