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 가능할 정도의 작은 변화 황혼의 부모님이 찾은 삶의 혁신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아버지는 개인용컴퓨터(PC)가 막 일반에 공급되던 1990년대 초반, 컴퓨터를 사서 내게 안겼다. 그즈음 우리 동네에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몇 되지 않았고 나는 그걸 가지고 뭘 해야 하는지 좀 당혹스러운 느낌이었다. 근처에 컴퓨터 학원이라는 곳이 생겼다고 해서 참관을 가보면 도형자로 프로그램 흐름도를 그려보면서 다양한 원주율의 원을 컴퓨터로 지루하게 생성시켜 보는, 나로서는 큰 흥미가 일지 않는, 수업을 할 뿐이었다. 컴퓨터 게임에도 별 관심이 없어 한글 프로그램으로 열심히 타자 연습이나 하던 열세 살의 나는 어느 날, 이 기계가 긴 글을 쓰기에 너무나 편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후 아버지는 아주 이른 시기에 휴대전화를 개통해서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그 휴대전화는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디자인이었다. 약간 과장하자면 벽돌과 무전기를 합쳐 놓은 듯하달까. 묵직한 몸체에는 송수신을 위한 가냘프고 앙증맞은 안테나가 달려 있었고 그것을 통해 어디에 있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디자인에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 무렵 마침내 자신만의 업체를 가지게 된 아버지의 자부를 보여준다고는 느꼈다. 그리고 뒤이은 아버지와 나의 삶을 생각해보면 우리를 다양하게 거쳐 간 각각의 휴대전화들로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도 나도 마치 경주하듯 여러 번 휴대전화 기기를 바꿨고 떠올려보면 그건 생의 중요한 변곡점들과 맞물려 있었으니까. 그러다 스마트폰이 공급될 무렵, 아버지는 더 이상 새로운 전자기기의 세계로 나가지 않고 2G 폰의 세계에 남았다. 자영업자로서의 여러 시련과 실패가 아버지의 삶을 관통하고 난 뒤였다.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 예약을 앞둔 어느 날, 아버지가 휴대전화를 새로 개통하러 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잠깐 외출할 때 말고는 전화할 일도 없다며 우리가 권해도 듣지 않던 아버지가 왜 갑자기 새로운 기계에 관심이 갔을까 싶었다. 이제 아버지와도 문자메시지로 더 많은 얘기를 하거나 화상 통화를 하게 되는 것일까. 수십 년간 신문을 구독하며 그것을 통해 세상을 읽고 인터넷상의 숱한 영상매체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라이프스타일이 드디어 바뀌는 것일까.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아버지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지금 전화기보다 조금 더 기능이 추가된 새 폴더폰으로 바꿔 돌아왔다. 나중에 여쭤보니 백신 예약을 앞두고 혹시 문제가 있을까 싶어 바꿨을 뿐이라는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낡은 휴대전화 상태가 사실 아버지도 좀 불편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 말이 좀 의아하게 들리다가 나중에는 동의하게 됐는데, 아버지 세대들에게는 백신 접종이 우리보다 더 중요하고 절박한 일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전환을 꿈꿔 볼 수 있는 체감적인 변화였던 것이다.
어버이날, 아버지와 나는 온라인으로 백신 예약을 했다. 그것은 내 스마트폰과 아버지의 폴더폰 모두가 필요한 일이었다. 부모님은 서로 시간차를 두고 백신을 맞겠다고 했다. 두 분 다 되도록 빨리 접종하는 게 낫다는 내 의견과는 달랐다.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간격을 둬야 해.”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