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3월 총선에서의 과반 달성 실패, 뇌물수수 혐의 재판 등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하마스와의 교전으로 집권 연장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사진 출처 네타냐후 총리 트위터
하정민 국제부 차장
형과 마찬가지로 사예레트 마트칼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세 살 아래 동생 베냐민은 비탄에 빠졌다. 형제는 사이가 좋았다. 사망 3년 전에도 요나탄은 동생에게 “나라 없는 떠돌이 유대인이 되느니 계속 싸우겠어. 타협은 종말을 재촉할 뿐이야”란 편지를 보냈다. 형이 죽었을 때 미국에서 생활하던 베냐민은 귀국 후 형의 이름을 딴 테러 연구소를 운영하고 관련 책을 여럿 집필했다. “형의 죽음으로 세계관이 달라진 게 아니라 기존 세계관이 더 확고해졌다”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45년이 흐른 지금 베냐민은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가 됐다. 공언했던 대로 15년 2개월이 넘는 집권 기간 내내 노골적인 반아랍 정책을 펴고 있다. 그는 인구 950만 명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국민과 정당 지도자를 ‘테러 지지세력’ ‘유대의 적’으로 칭했다. 2018년에는 아예 ‘유대민족국가법’을 제정해 이스라엘을 유대인만의 조국으로 규정했다. 아랍계를 2등 시민으로 만든 이 법을 두고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 높은 흑백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의 21세기 버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안보 문제를 제외하면 네타냐후는 공과 논란이 상당한 정치인이다.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사에 “유리한 기사를 써주면 경쟁사의 발행부수를 줄여주겠다”고 접근하고, 해외 사업가들에게 최고급 샴페인과 시가를 선물로 받고 면세 혜택을 줬다는 의혹 등으로 2019년 현직 총리 최초로 기소됐다.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실각하면 면책특권이 사라져 곧바로 감옥에 갈 수 있다. 심심찮게 총리공관 직원에 대한 갑질 의혹에 휩싸인 그의 부인 역시 관저 공금 유용 논란으로 별도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이 부부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더러운 빨래를 잔뜩 가져와 미국이 제공하는 고급 세탁 서비스를 즐긴다는 좀스럽기 그지없는 폭로까지 터졌다.
설사 네타냐후의 지지자라 해도 그를 흠결 없는 정치인으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국민은 1948년 건국 후 무려 20.7%에 달하는 긴 시간을 그의 손에 맡겼을까. ‘나와 가족의 피로 조국을 지켰다’는 그의 주장이 허언만은 아님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막대한 비용 등을 우려한 내부 반발이 많았지만 2011년 그가 도입한 저고도 미사일 방어망 ‘아이언돔’은 이달 10∼20일 벌어진 하마스와의 교전에서 그 위력을 과시했다.
냉혹하고 비정한 국제 정세 또한 네타냐후 같은 강경 우파 정치인이 득세할 토양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번 하마스와의 교전 초기 독일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했다. 스웨덴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한국, 그리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독일 무기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피해자가 가해자의 무기를 사들이고 그 가해자의 지지를 얻어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상황이야말로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비정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네타냐후가 상당 부분 정치적 의도에서 팔레스타인과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이 15년째 그를 택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네타냐후가 실각해도 언제든 제2, 제3의 네타냐후가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