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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과 자립, 평생의 숙제[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입력 | 2021-05-26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나오자마자 벌떡 일어서는 어린 짐승과 달리 아기는 엄마에게 매달려 몇 년을 보내야 유치원에 갑니다. 의존해야 젖도 먹고 마음도 큽니다. 성숙한 인간은 의존형 인간에 세월이 더해져 숙성된 결과입니다. 엄마가 꽤 괜찮은 능동적인 엄마여야 가능하고, 보살핌이 부족하면 몸과 마음에 장애가 남습니다.

소아과 의사이자 분석가인 영국의 도널드 위니컷은 아기와 엄마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젖 먹이고 안아 주는 별개의 사람 정도로 엄마를 피동적 존재로 여겼던 지크문트 프로이트와 달리 위니컷은 엄마와 아기를 한 팀으로 생각했습니다.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아기가 점점 자립적인 존재로 변화하는 과정을 자세히 기술했습니다. 물론 어른이 되어도 그 누구도 절대적인 자립을 성취할 수는 없고 단지 그 방향으로 성장하면서, 각자 책임을 지면서 다른 사람들과 서로 의존하면서 산다고 했습니다. 병이 들거나 보행이 어려워지면 아기와 비슷한 상태로 되돌아가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니 의존과 자립은 풀려고 하지만 풀 수 없는 평생 숙제입니다.

아기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의존 욕구는 줄어들고 자립 의지는 늘어납니다. 단계를 나누면 △절대적 의존 △상대적 의존 △의존과 자립의 혼재 △자립입니다. 절대적 자립은 불가능하기에 자립이란 개인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이나 사회와 어울리며 동시에 자신의 행위에 상당한 책임을 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립 정도는 나이가 많고 적은 것과는 무관합니다.

절대적 의존은 엄마의 자궁 속에 있을 때와 출생 직후 이유(離乳)까지의 기간에 일어납니다. 태아는 물론이고 신생아의 건강과 생존에도 엄마의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자궁 속에서 삶이 끝나거나 태어나다가 잘못될 수 있습니다. 절대적 의존은 엄마 없이는 아기의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집착’하지 않으면 아기의 생존이 지체 없이 위협받습니다. 이렇게 신체의 생존은 엄마의 보살핌에 전적으로 기대지만 신기하게도 아기의 마음에는 자립의 싹이 이미 트고 있습니다.

엄마 존재의 절대성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타고난 잠재력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아기의 잠재력이 발현되도록 도울 뿐이며 부모 환상 속의 아기로 키울 수는 없습니다. 아기는 엄마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의존하고 있음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엄마이고 엄마가 자기인, 나와 남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배가 고프면 젖이 입에 들어오고 몸이 따듯하고 편안한 상태를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착각합니다. 자신이 무한한 힘을 가졌다는 환상에 빠져 삽니다.

젖을 안 먹게 되면서 아기는 엄마를 다른 개체로 인식합니다. 그동안 의존해 왔음을 깨닫는 동시에 이제는 엄마에게 덜 의존하면서 세상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서로 간의 관심과 집중은 산만해집니다. 엄마도 아기가 아닌 자신의 고유한 삶이 있음을 새삼 확인합니다. 서로가 ‘우리’를 벗어나서 ‘나’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아기에게 ‘안’은 자신이고 ‘밖’은 엄마를 포함한 남입니다. 이때 “우리’에서 못 벗어나면 아기의 발달에 걸림돌이 생깁니다.

엄마가 자신의 생존에 절대적인 힘을 지닌 별개의 존재임을 아는 순간 엄마에 대한 두려움이 아기에게 찾아옵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어른이 되어서 여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지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고 위니컷은 주장했습니다. 그는 모든 인간이 엄마에게 매달렸던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남녀 간 갈등을 줄일 수 있으며, 절대 권력자의 출현과 그에게 지배받으려는 대중의 성향이 여성에 대해 사회가 숨기고 있는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또 그는 남자가 위험한 운동을 하려고 하는 속마음에는 여성의 출산 능력에 대한 부러움 때문에 출산의 위험을 대리 경험하려는 동기가 들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은 출산으로 존재를 이어가는 무한한 존재이지만 남성은 유한하다는 뜻의 말도 남겼습니다.

의존과 자립의 긴장은 청소년기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어른이 되었다고 마음의 성숙함이 완결된 것은 아닙니다. 성숙으로 가는 과정은 평생 진행형입니다.

위니컷의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정치인의 의존과 자립에 대한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정치인에게는 정당이 엄마와 같은 존재일 겁니다. 엄마와 아기 사이처럼 정당과 정치인 사이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립할 능력이 없는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 생존이 위협받습니다. 너무 오래 의존해 매달리면 아이처럼 보이니 그것도 큰일입니다. 눈치 보기를 멈추고 언제 ‘이유’를 해야 할지 결정하려니 머리가 아픕니다. 자립했다가 되돌아가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정치 현장에 위니컷의 생각들을 대입하니 잘 보입니다. 정치도 사람, 성격, 관계로 움직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