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이후]“北주장 수용 오해 여지” 지적 나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5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시된 ‘한반도 비핵화’가 북한이 주장해온 ‘조선반도(한반도) 비핵지대화’와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 철폐와 전략폭격기 등의 한반도 전개 금지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까지 요구하는 의미로 비핵지대화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장관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 성과 브리핑에서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와 우리 정부가 말하는 비핵화가 어떻게 다르냐’란 질문에 “둘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북한은 1959년 4월 “아시아에 핵무기 없는 평화지대를 창설하자”고 주장한 이래 줄곧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주장해왔다. 북한이 내세우는 ‘조선반도 비핵화’도 이런 맥락에서 쓰이고 있다. 특히 북한은 2016년 5월 7차 노동당 대회 직후 정부 대변인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서 ‘조선반도 비핵화의 5대 조건’으로 한국 내 미국 핵무기 공개와 한국 내 모든 핵기지 철폐 및 검증, 전략폭격기와 같은 미국 ‘핵타격수단’의 한반도 전개 금지 보장,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과 위협 금지 약속, 주한미군 철수 선포를 내세웠다.
한편 한미 정상 간 공동성명에 ‘한반도 비핵화’가 언급된 데 대해 정 장관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초기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를 혼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미 양측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용어를 통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3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북한 비핵화”라고 표현하자 정 장관이 곧바로 “한반도 비핵화가 맞다”고 지적하면서 비핵화 정의를 둘러싼 한미 간 불협화음이 노출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까지만 해도 줄곧 ‘북한 비핵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부 고위 당국자들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썼고 이번 한미 정상 간 공식 문서에 명시됐다. 정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에서 공식적으로 ‘한반도 비핵화’ 표현으로 비핵화를 약속한 만큼 이 표현을 쓰는 것이 김 위원장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