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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한국산 장비로 무장한 소속 없는 北부대 1여단

입력 | 2021-05-27 03:00:00


현대 마크가 선명한 덤프트럭을 타고 북한 군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현대라는 영문 상표는 파란 페인트로 지웠다. 2010년 이전 사진으로 촬영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출처 현대트럭앤버스 홈페이지

주성하 기자

구글어스로 북한을 자주 살펴본다. 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을 제외하면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정은 관저나 별장은 많이 바뀐다.

대표적으로 평양 중심부 김정은 관저는 두 차례나 리모델링됐고, 원산 별장도 김정일이 쓰던 기본 건물을 버리고 새 단장을 했다. 별장 주변엔 비행장을 새로 건설했다가 2년 전에 없애고 그 자리에 승마장을 만들었다. 원산공항이 새 단장하면서 일부러 전용비행장까지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것 같다. 김정은 집권 몇 년 사이 전국 별장 주변마다 깔끔하게 건설된 전용 비행장들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걸 통해 김정은이 자신의 향락과 관련된 시설에 관심이 많고, 이것저것 요구 조건도 까다롭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공사는 김정은의 호화 생활에 대해 소문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 또 최고 수준의 건설 기술과 안전 기준을 갖춰야 한다. 이를 도맡아 하는 조직이 1여단이다.

1여단은 편제 자체가 특별하다. 분명 군인들인데, 국방성이나 총참모부 호위사령부 등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다. 오직 김정은의 지시만 받는다.

1여단장은 일반 부대 군단장 계급인 중장 또는 상장이 맡는다. 평양시 형제산구역 중당동에 본부를 둔 1여단은 여단 재판소까지 따로 갖고 있다. 군인들은 범죄를 저지르면 인민군 검찰소나 재판소에서 다루는데, 1여단은 비밀이 새 나갈까 봐 처벌도 따로 하는 것이다.

이 부대가 원래 소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일성 시절 그의 지시를 받는 공병국이라는 건설부대가 생겼는데, 군이 아닌 사회안전부(경찰청) 소속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김정일이 아버지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쓰기 위해 공병국에서 1개 여단을 떼어내 호위사령부에 소속시키고 전국 도처에 별장을 지었다. 김일성 사후 공병국은 찬밥 신세가 됐지만 1여단은 승승장구했다. 힘이 커져 나중엔 호위사령부에서도 독립한 것으로 보인다.

1여단의 능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는 2010년 여름 불과 일주일 만에 평양 주요 도로 아스팔트 포장 공사를 다 끝낸 것을 들 수 있다. 그해 9월 28일 김정일은 44년 만에 노동당 대표자대회를 열고 김정은을 공개했는데, 직전에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평양 주요 도로를 모두 포장했다. 이를 1여단이 맡았다. 공사 기간은 보름 정도 잡았지만 일주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평양사람들이 모두 놀랐다고 한다.

물론 평양은 완벽한 교통 통제가 가능해 특정 구간을 폐쇄하고 주야로 공사할 수 있다. 하지만 장비와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게 가능한 유일한 집단이 1여단이다.

흥미로운 점은 1여단이 사용하는 덤프트럭은 모두 현대가 만든 트럭이라고 한다. 이 부대를 아는 탈북민에 따르면 덤프트럭 외에 굴착기, 불도저 등 기본 장비의 80%가 현대나 두산에서 생산한 한국산이라고 한다. 나머지 특수장비의 경우 일본산 비중이 높다.

한국산 장비들은 어떻게 북에 들어갔을까. 2006년 한국이 신포 경수로 공사에서 철수하며 건설 중장비 93대와 차량 190대를 남겨두고 온 기록이 있다. 같은 해 노무현 정부가 수해복구 명목으로 굴착기 50대, 페이로더 60대, 8t 덤프트럭 100대를 지원했다.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했을 때도 덤프트럭은 아니지만 일반 현대트럭 100대도 넘어갔다.

이를 포함해 이런저런 경로로 남쪽에서 넘어갔거나, 중국에서 수입한 한국 트럭을 고스란히 1여단이 접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비밀 유지가 철저한 1여단이 한국산 차량을 몰아 갖고 있는 것이 북한 입장에서도 유리하다. 2015년 한국이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면서 남겨둔 각종 차량 100여 대 중에서도 이미 1여단에 넘어간 것이 있을지 모른다. 1여단은 최우선적인 특혜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필요한 부품은 중국에서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1여단은 각종 비밀이 필요한 특수 건설도 담당한다. 평북 동창리 기지와 영변 핵단지 시설 공사 때 수해 지원으로 보냈거나 신포에 남겨둔 한국산 중장비가 동원된 정황을 한미 정보기관이 포착했다. 그렇다면 이 공사도 1여단이 맡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이 순간도 1여단 현대 덤프트럭들은 어디에 가서 열심히 달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